원고지를 빼곡히 채운 건 잉크가 아니었다
커피 의지해 하루 15~18시간 집필
매일 50잔 평생 3만~5만 잔 마셔
가루 거르지 않아 걸쭉하고 진해
잔 속 잔여물로 점괘풀이 풍습도

예술가가 사랑하는 음식이 궁금했습니다. 그들의 취향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알고 싶었습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커피를 사랑한 남자,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입니다. 그는 식탐만큼이나 문학에 대한 열정도 뛰어났는데요. 발자크가 커피에 의지해 글을 쓰다가 유명을 달리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커피 중독자 발자크 = 프랑스 대문호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는 젊은 시절 인쇄·출판 사업에 손을 댔으나 실패했다. 그는 빚을 갚고자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주요 저서인 <인간희극>(1842)에는 소설 90여 편이 담겨있으며 등장인물만 무려 2000여 명이다. 그는 매일 집에 틀어박혀 하루 15~18시간씩 글을 썼다. 커피와 함께.

발자크에게 커피란 '삶의 원동력'이자 그를 계속 작동하도록 하는 '검은 석유'였다.

"커피가 위 속으로 미끄러지듯 흘러들어가면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각이 전쟁터의 대부대처럼 몰려오고 전투가 시작된다. (중략) 재기 발랄한 착상들이 명사수가 되어 싸움에 끼어든다. 등장인물들이 옷을 입고 살아 움직인다. 종이가 잉크로 뒤덮인다." (발자크 작 <커피송가> 중)

그는 하루 커피 50잔을 마셨다. 54살 평생 마신 커피는 약 3만~5만 잔. 카페인 과다섭취로 죽었다.

"벌써 두세 번이나 이 과열된 기계가 나직하게 덜컹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이 나타났고 죽음 비슷한 잠과 위통을 동반한 과격한 피로 증세는 블랙커피를 지나치게 마셔서 생겨난 것이다."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중)

발자크는 특히 독한 터키식 커피를 즐겨 마셨다.

▲ 터키커피는 커피가루와 물과 설탕을 제즈베에 넣고 모래 위에서 끓인다. 진주 대곡상회 박종민 대표가 터키커피를 끓이고 있다.

◇터키에 세계 첫 카페 등장 = 유럽 땅에 커피를 전파한 나라는 터키다. 그리고 세계 최초 카페가 탄생한 곳이다. 대략 1550년대로 추정된다. 음식 전문 저술가인 가브리엘라 바이구에라가 쓴 <커피&카페>에 따르면 1555년 시리아인 부부가 이스탄불에 커피 가게를 열었다. 당대 시인과 지식인들, 신비주의자 등 누구에게나 개방된 장소였다.

1614년 인문학자 피에트로 델라 발레가 쓴 기행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터키 사람들은 검은 빛깔의 음료를 마신다. 사람들은 이를 불에 뜨겁게 해서 마시는데 식사 중에는 마시지 않고 식사 후에 마치 군것질거리처럼 조금씩 천천히 마신다. (중략) 터키 사람들 말에 따르면 위와 소화불량에 도움이 되고 류머티즘과 카타르(점막 염증)를 막아 건강을 지켜준다고 한다.'

▲ 제즈베에 커피 가루와 물, 설탕을 넣고 300도 모래 위에서 끓인 후 커피 찌꺼기를 부어 만든 터키 커피. 걸쭉한 맛이 난다.

◇걸쭉하면서도 진한 커피 = 일반적으로 커피를 추출할 때는 여과지에 커피를 거르거나(핸드 드립) 에스프레소 기계, 모카포트를 이용한다. 그렇다면 터키식 커피는 우리가 마시는 커피와 어떻게 다를까. 터키 커피를 판매하고 있는 진주 대곡상회를 찾았다.

박종민(32) 대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 제조법으로 주전자에 커피 가루와 물, 설탕을 함께 넣고 끓여서 만든다"며 "터키 커피 문화는 지난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에 등재됐다"고 설명했다.

인류가 처음 커피를 마실 때 먹는 방법, 그대로다. 단, 터키 커피를 끓이려면 동으로 만든 '제즈베(Cezve)'가 필요하다. 손잡이가 달린 뚜껑 없는 주전자다.

터키 커피는 원두 질과 불의 강약이 중요하다. 원두는 에스프레소 커피보다 더 가늘고 곱게 갈아야 한다. 커피 가루와 물, 설탕을 제즈베에 담아 300도로 달군 모래 위에서 끓인다. 만들기 쉬워 보이지만, 주전자를 휘젓는 '스윙(swing)'에 따라 거품 풍성도(크레마)가 달라진다. 터키 사람들은 커피, 물, 설탕을 연속해서 빠르게 세 번 끓인 뒤 작은 잔에 찌꺼기까지 붓는다.

박 대표는 핸드 드립 커피와 터키 커피를 내놓으며 맛의 차이를 느껴보라고 했다. 커피 가루를 거른 것과 거르지 않은 것. 둘 차이가 궁금했다.

▲ 여과지에 커피를 거른 핸드드립 커피. 터키 커피에 비해 색이 연하고 뒷맛이 깔끔하다.

커피 색깔은 터키 커피가 더 진했다. 핸드 드립 커피는 뒷맛이 깔끔했고 터키 커피는 묵직하면서 걸쭉했다. 커피 가루를 거르지 않아 입안이 텁텁할 거라 생각했는데…. 괜찮았다. 목에 넘겼을 때 이물감이 거의 안 느껴졌다. 단맛은 커피의 풍미를 더했다. <커피견문록> 저자는 터키 커피에 대해 "잔 속에 불끈 쥔 주먹이라도 들은 양 강렬하고, 쓰고, 검다"라고 표현했다.

박 대표는 "자연스럽고 깊은 맛이 특징이다"며 "원두를 천천히 끓여서 우려내기 때문에 카페인 함량이 다른 커피보다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 터키커피를 마시고 나면 커피잔 맨 밑에 커피가루가 보인다. 터키에서는 남은 커피 흔적으로 점을 보기도 한다. 기자가 마시고 난 뒤 잔에 남겨진 모양을 보고 대곡상회 대표는 "나무 모양으로 오늘 하루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에서는 커피를 다 마신 뒤에 주인이 커피 찌꺼기를 보고 손님의 미래를 점쳐준다. '커피점(占)'이다. 기자의 잔에는 나무 모양이 남았는데 '길조'란다.

박 대표는 "일부 손님은 설탕을 빼달라고 하는데 터키에선 누가 돌아가셨거나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커피에 설탕을 넣지 않는다"며 "커피를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참고 문헌

<커피견문록>, 스튜어트 리 앨런, 이마고, 2005

<커피&카페>, 가브리엘라 바이구에라, J&P, 2010

<커피의 역사>,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 자연과 상태,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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