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에 소멸·탄생하는 직업
신구 조화로 대량실직 막아야

예전에 미국에서 기계가 굴을 파자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걸 걱정하며, 한 노동자가 기계와 자신이 굴을 파는 내기를 해서 자신이 이기면 노동자를 해고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렇게 굴을 팠고 사람이 이겼다네요. 그런데 그 사람은 굴을 다 판 후 과로로 숨을 거두었답니다.

영국에서 자동차가 나오자 친환경이라며 선전하였답니다. 말은 먹어야 하고 배설을 해야 하니까 마차가 다니는 길에는 말똥이 널렸으니 차가 친환경이라고 할 만도 합니다. 자동차가 보편화되면 당시 마차와 관련한 일을 하던 사람들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문제였고, 마차를 몰던 사람들이 반발하여 법으로 자동차는 10㎞ 이상 달릴 수 없고, 차 앞에서 사람이 빨간 깃발로 차가 간다는 것을 알려야 했답니다. 그래서 영국의 자동차 개발자들이 다른 나라로 갔고 영국의 자동차는 별 볼 일 없게 되었답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영국의 섬유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하청을 받아 기계를 빌려서 생산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임금은 겨우 빵 하나 살 정도의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영국에는 단결금지법이 있어서 단체행동이나 단체교섭을 할 수 없었으나 노동자들은 자본가의 착취에 저항하기 위해 빌려쓰던 방적기를 부쉈다고 합니다. 영국 정부는 주동자를 처형하는 등 탄압을 하였지만 모금 운동과 지식인들의 응원에 힘입어 단결투쟁은 승리하였답니다. 러다이트 운동의 결과로 노동조합이 자본가와 협상하는 단체교섭권이 생겼답니다.

1961년에 교통부장관이 여차장제를 도입하면서 시내버스와 고속버스, 관광버스에서 일을 하였답니다. 1985년, 필자가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갈 당시에는 관광버스에 안내원이 있었습니다. 함양군 부근의 지리산을 지나오면서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길이 60리이고 산적이 많아 장정 60명이 모여서 서로를 의지하고 넘어갈 수 있어서 60령 고개라고 설명해주던 게 아직도 기억 한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984년부터 하차지에 대한 안내가 시작되었고, 유압식 자동문과 기계식 돈통이 도입되고 버스벨이 부착되어 급속도로 사라졌으며, 마지막 버스안내양들은 1989년 4월에 김포교통 소속 130번 버스에서 근무하던 38명이었다고 위키백과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안내원들은 버스 출발을 알리기 위해 버스 차체를 두드리면서 '오라이'라고 했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코미디언 이영자 씨는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버스 안내원으로 출연해 '안계시면 오라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었으며, 2015년 가수 박시은 씨는 '안계시면 오라이'라는 곡을 발표해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알파고는 바둑계의 거장들을 이겨버렸고, 1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스마트폰을 어린아이도 가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미국에선 자율주행 택시와 버스가 시범운행을 시작했고,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에선 자율주행 버스가 시범운행 되었으며, 서울 상암동에서는 무인자동차 시험을 위한 기본시설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대중교통 운전사와 트럭 운전사는 사라질 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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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가 파업한다고 새로운 기술과 방법이 묶여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과거 주산 학원은 컴퓨터 학원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사라지는 직업과 새로 생겨나는 직업이 조화를 이루어 대량 실직을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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