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서훈 1만 5180명 중 48.5%
청년독립회 2명 묘소도 미확인

안장된 장소를 모르는 독립유공자가 전국적으로 7307명에 이른다. 정부가 묘소 위치를 파악하고 있더라도 불명확한 경우에는 찾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공로로 서훈된 독립유공자는 1만 5180명.

이 중 묘소 위치가 파악되지 않은 독립유공자가 전체 48.5%(7307명)이다. 국가보훈처는 묘소 위치를 파악하고자 2015년부터 '독립유공자 산재 묘소'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2015년 1000명, 2016년 1603명, 2017년 1905명, 2018년 852명 등 5360명 묘소를 조사해 3399개 묘소 소재지를 확인했다.

'국내 산재' 2471명, '국외 소재' 30명, '산골' 414명, '북한 소재' 175명, '멸실' 139명, '국립묘지' 170명이다.

산골(散骨)은 유골을 화장해 그대로 땅에 묻거나 산·강·바다 등에 뿌린 경우다. 멸실(滅失)은 있던 묘소가 어떤 사유로 없어지거나 잃어버린 경우다.

서훈된 청년독립회 단원 8명 중 묘소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이는 6명뿐이다.

최근 생존자가 확인돼 주목을 받은 청년독립회는 일제강점기 말 창원지역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청년 독립운동단체이다.

1942년 7월 조직된 단체는 신사참배 거부운동과 '조선독립만세' 벽보사건 등을 일으켰다. 1944년 12월 진해헌병대에 발각돼 백정기·김명수·김광수·박대근·오경팔·조문대·최을택·배장실·장재상·박상규 등 단원 10명 모두 1945년 8월 15일 광복 전후까지 7~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95년 김명수(건국훈장 애족장) 씨와 김광수·박대근·조문대·최을택·장재상·박상규(대통령 표창) 씨, 2005년 배장실(대통령 표창) 씨는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았다.

재소자인명부 등 문서에 명확히 남아 있지 않은 백정기·오경팔 씨는 객관적인 입증자료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포상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오경팔(90) 씨는 청년독립회 단원 중 유일한 생존자다.

박대근(1989년 9월 사망)·장재상(1959년 3월 사망) 씨는 대전현충원, 조문대(2000년 2월 사망) 씨는 김해 낙원공원묘원에 안장됐다. 김광수(2002년 4월 사망) 씨는 '산골', 최을택(1976년 1월 사망) 씨는 '멸실'로 확인됐다.

그러나 정부는 김명수(1945년 9월 사망) 씨가 어디에 안장됐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배장실 씨는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박상규(1998년 10월 사망) 씨는 구체적인 묘소 위치 없이 '경남 합천 봉산'으로만 파악돼 있었다. 박 씨는 실제 합천군 봉산면 송림리에 묻혀 있고, 공적을 새긴 비석도 있다.

국가보훈처는 "실태조사 방식은 방문조사가 원칙이지만 부득이한 경우 서면조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유공자 가족이나 후손이 말하는 그대로 옮겨 적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지역사 연구가 박영주 씨는 "가족·후손과 연락이 잘 안 되거나 심지어 가까운 후손이 없는 경우도 있다. 정부에서 묘소 위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서도 "국가에서 묘소까지 철저히 파악하고 관리해 널리 알려야 사람들이 독립운동가 누구의 묘소라는 사실을 알고 기릴 수 있고, 후손들 또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