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세월 오롯이 간직한 내 고장 일화
각계각층 거제시민 26명 참여
거제면 역사 흔적·유물 재조명
근대사와 함께 읽는 자연·사람

매년 거제 섬 곳곳에서 이야기를 발굴해 책으로 내는 거제스토리텔링협회가 거제스토리텔링북 6집을 냈다. 매번 제목을 달리하는데 이번에는 <거제도 섬꽃 따라 이야기>다. 참고로 지금까지 1집부터 <길, 거제도로 가다>, <섬길 따라 피어나는 이야기꽃>, <거제도 섬길 따라 이야기>, <거제도 천년의 꿈을 품다>, <거제도 바람 따라 이야기>였다.

6집 '섬꽃따라 이야기'는 학생, 시인, 기자, 교사, 수필가, 향토연구가 등 모두 26명이 참가했다. 이 중엔 기존 회원도 있지만, 거제 이야기 공모를 통해 선정된 이도 있다.

이번 책은 거제면 특집이라고 할 수 있다. 거제면은 삼한, 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 거제현 관아가 있는 곳으로 오랫동안 거제의 중심이었다. 옥산성지, 기성팔경, 기성관, 거제초등학교 등 거제면에 있는 여러 역사 흔적과 유적 이야기가 이번 책에 실렸다. 사실 꼭 유적이 아니라 거제읍내만 둘러봐도 오래되고 정겨운 풍경이 가득하다.

▲ 거제면의 기성팔경을 관찰했다는 수정봉 옥산금성의 금성대. /경남도민일보 DB

"예나 지금이나 거제읍내 장터에서는 온종일 바닥을 보고 사는 눈치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이 난장에 퍼질러 앉아 채소를 손질하는 모습이 군데군데 보인다. 장터 안 방앗간의 낡은 텔레비전에서는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 옆엔 양팔을 벌려 꼭 안아주면 도리어 더 큰 몸뚱이로 감싸줄 것만 같은, 오래된 고목이 거제 읍내 장터의 푸짐한 인심을 대신 말해준다." (75쪽, 거제제일고 2학년 안채현 학생 글 중에서)

책 뒷부분에는 '아시나요'란 항목으로 거제의 지난 시절 이야기들이 회고 형식으로 실렸다. 거제 하청 부두 지역 옛 풍경을 묘사한 다음 글을 보자.

"새벽녘에 잠이 깰 때면, 순구네 할아버지의 마른기침 소리와 선착장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간 그와 달리, 밤새 쳐놓은 그물을 걷은 어부들은 통통배를 이끌고 선착장을 향해 들어섰다. 가까울수록 뱃소리는 커져가고, 그것이 신호인 양 사람들은 모여들었다. (중략) 작은 항구에 사람들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돌아가면, 산 위로 해가 높이 솟아올랐다. 이른 아침의 왁자지껄한 일상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을은 다시 고요를 되찾는다."(196~197쪽. 심인자 수필가 글 중에서)

여기에 부산 국제시장의 원조격인 거제포로수용수 주변 '돗대기 시장' 이야기(이승철 수필가)도 재밌다. 또 흥남철수작전에서 기적처럼 1만 4005명을 구출한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그 배 안에서 태어난 다섯 아기, 그 아기 중 한 명인 '김치 5' 이경필 장승포가축병원 원장 이야기(서한숙 수필가)도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돗대기 시장은 토트 준장의 이름을 따 만들었다는 게 정설이다. 거제의 돗대기 시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부산지역으로까지 영역을 넓혔으며, 이후 부산 돗대기 시장은 국제적인 물건이 많다는 의미로 '국제시장'으로 불린 것이다. 돗대기 시장은 당시 거제포로수용소에서 나온 각종 통조림, 군대천막, 의약품, 치약, 칫솔, 주로 포로들이 훔쳐서 피난민들에게 팔기도 하고, 양공주들이 미군을 상대로 받은 물품들을 팔기도 했다." (188쪽, 이승철 수필가 글 중에서)

"그런 비참한 지경에서도 배 안에서는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는데, 김치 1, 2, 3, 4, 5가 그들이다. 이는 한국 하면 김치가 먼저 생각난다는 이유로 미군에 의해 태어나는 순서대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중에서도 맨 마지막에 태어난 아기가 '김치 5'이다. 그는 배가 장승포항에 입항할 무렵에 태어났다. 그것도 195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다." (211쪽, 서한숙 수필가 글 중에서)

도서출판 경남 펴냄, 215쪽,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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