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협력 없이는 역사적 등정 어렵듯
연구원의 파트너 '연구조원'역할 중요

히말라야 고봉을 등정하는 클라이머(Climber·등반가)는 거의 셰르파(Sherpa)와 함께한다. 등반을 도와주는 도우미 정도로 알려진 '셰르파'는 티베트어로 '동쪽 사람'이라는 뜻으로 티베트족 계열의 고산족 이름이다. 셰르파 존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53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등정한 영국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정상에 오른 텐징 노르가이 셰르파가 소개되면서부터다. 셰르파는 짐을 나르는 단순한 짐꾼에서부터 등산 안내자까지 히말라야 등반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셰르파 없는 히말라야 등정은 상상하기 힘들다.

연구개발에서도 클라이머와 셰르파가 있다. 연구원이 클라이머라면 연구조원이 셰르파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연구원은 연구목표·연구내용·연구방법 등의 전반적인 연구계획을 수립하고, 연구조원은 실질적인 실험·시제작·시험평가·연구행정 등을 수행한다.

신소재를 개발하는 실제 연구 과정을 하나의 사례로 살펴보면, 연구책임자를 비롯한 연구원들은 기존 소재의 논문·특허·시장 분석을 통해 새로운 소재에 적합한 각종 합금 원소들을 조합하고 제조하는 방법을 설계한다. 연구조원은 그 설계에 따라 원소들을 섞어서 새로운 알루미늄 합금을 만들고, 현미경을 통해 조직사진을 찍고, 강도·연성 등의 시험을 수행한다. 연구원은 연구조원의 실험결과를 해석해서 우수한 소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문제점을 분석한다.

이처럼, 연구원만이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연구조원과 함께한다. 히말라야의 셰르파처럼 연구조원이 없는 연구는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고, 연구 효율성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효율적인 연구 수행을 위해 수 명에서 수십 명의 연구원과 연구조원이 업무를 분장하고 하나의 팀을 이룬다.

한 팀이라고 하지만, 연구조원의 위상이 연구원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사실이다. 마치 클라이머와 셰르파의 위상 차이와 같이, 연구조원의 업무는 연구원보다 그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져 왔다. 연구조원은 조금만 교육받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정도로 치부되었다. 연구기관에서도 연구원의 역할을 더 강조한 나머지, 연구직은 정규직으로, 연구조원은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연구원들도 연구조원에게 전문성보다는 높은 숙련도(skill)를 요구했었다. 연구원의 업무지시(설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능수능란하게 장비와 시설을 활용해 실험결과를 얻는 능력을 높이 샀다. 하지만, 최근 연구조원의 역할이 숙련을 요하는 업무에 그치지 않고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전산모사, 첨단장비 운영, 빅데이터 분석 등의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실제 실험에 앞서 컴퓨터로 모의 실험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전산모사)이 연구개발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전자현미경과 같이 최첨단 시험분석 장비를 다루고 해석하는 연구지원 업무가 증가하고 있다. 또한, 각종 실험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들 데이터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빅데이터 전문가도 연구조원의 새로운 역할로 부상하고 있다. 연구조원은 연구원을 지원하는 조력자 역할에 그치지 않고, 연구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적극적인 선도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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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연구조원의 중요성이 커지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연구조원에 대한 제대로 된 실태 파악과 정책적 관심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실험의 질은 연구조원의 역량과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연구조원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인력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연구조원의 역할에 대한 재조명과 새로운 인식 전환으로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같이 우수한 연구조원이 과학기술계에서 많이 배출되고, 큰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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