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여의 목소리에 놀란 진왕은 얼떨결에 그렇게 대꾸했다. 인상여는 못들은 척하고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만 소신은 진나라에 화씨벽을 넘기자고 간청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서민의 교제에도 서로 속이지 않는데, 하물며 진나라같은 대국이 속임수야 쓰겠습니까?”하고요. 그 결과 우리 조왕께선 닷새동안 목욕재계하고 저를 시켜 벽을 받들어 삼가 진나라 궁중으로 보냈던 바입니다. 말하자면 천하의 보물을 대국의 위엄에 대한 최소의 경의 표시는 한 뒤 벽은 진나라에 도착됐다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벽을 받아야 되겠소?”

“그런데도 지금 도착해 보니 대왕께선 벽을 가져온 사신을 빈객으로 대우하기는커녕 대왕의 신하처럼 대하는데다, 일개 궁녀에까지 벽을 돌려 희롱했습니다. 그런 대왕의 행동으로 보아 성시를 보상으로 줄 리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제가 벽을 도로 돌려 받았던 것입니다.”

주위의 움직임이 심상찮았다. 그래서 인상여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저를 겁주어 벽을 빼앗으려 한다면 저는 이 벽과 함께 제 머리를 부딪쳐 깨고 말겠습니다.”

정작 인상여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서 기둥을 노려보자, 진왕은 황급히 말렸다.

“가만!”

실상은 인상여의 머리가 깨어지는 게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벽이 깨어진다는 사실이 훨씬 겁이 났었다.

“무엇입니까?”

“15개의 성시를 조나라에 돌리겠소. 어서 지도를 가져오너라.”

관리가 진나라 지도를 가져오자, 진왕은 여기저기에다 손가락으로 무턱대고 찍었다.

그 역시 속임수임을 단정한 인상여는 진왕에게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화씨벽은 천하가 공동으로 전하는 보배입니다. 누구나 아끼는 천하의 명옥입니다. 조왕 역시 이 벽을 무척 아꼈으나 진왕의 위엄이 두려워 감히 바치기로 했던 것입니다. 어차피 조왕께서는 이 벽을 보낼 때 닷새 동안이나 재계하셨으니, 이것을 받는 대왕 역시 닷새 동안 재계하십시오. 그런 후 구빈(九賓)의 예(禮:王이 빈객에게 행하는 9가지 궁중례)를 갖추셔야만 저는 감히 이 벽을 올리겠습니다.”

진왕은 체면상 벽을 강탈할 수는 없었다. 닷새동안 재계할 것을 약속한 뒤, 인상여를 특등가옥에 머물도록 했다.

인상여는 자신의 종자 한 사람을 조용히 불렀다.

“너는 이 벽을 품 속에 몰래 숨겨 가지고 가만히 진나라를 빠져 나가거라. 남루한 옷일수록 좋다.”

눈치를 챈 종자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벽은 조나라가 다시 찾게 되겠지만 주인님의 목숨은 위태롭습니다!”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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