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그리고 삶과 이야기의 터전
내가 도시이고 도시가 내가 되는

4년 전 아파트 생활을 끝내고 집을 짓게 되었다. 건축 설계를 부탁한 교수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이 집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왜 주택에서 살고 싶은지를 물었다. 건축가가 알아서 멋지게 지어주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이 나에 대해, 내 삶에 대해 터놓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4년이 지난 지금 그때 교수님과 나눴던 생각들이 집안 곳곳에 공간이라는 형태로 존재함을 느낀다. 그 공간에서 내 삶이 바뀌고 있는 것도 느낀다.

얼마 전에 읽은 승효상의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는 내가 가진 건축과 삶의 연결고리를 도시라는 공간으로 확장시켜주었다. 주택이 한 개인, 가족의 삶을 담는다면, 도시의 건축은 기능과 물리적 배경으로서가 아닌 도시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건축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도시 대부분은 건축의 기능이나 용도 이외에 그것이 만들어내는 영향력과 공공성을 잊고 있는 듯하다. 도시 자체는 인간 삶의 중요한 터전이 되었다. 그 도시는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 또 다른 공동체인 것이다. 그래서 그 공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자유로워야 하며, 그것은 도시의 건축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공간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가는 도시의 다섯 가지 구성요소(길·모퉁이·지역·교차점·랜드마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길이라고 말한다. 길이 마치 우리 몸의 핏줄처럼 도시민의 삶을 흐르게 하고 지탱시킨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랜드마크에는 삶이 없고, 길에는 일상의 삶이 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건축물의 이미지가 아니라 건축물 사이에, 거리에서 만들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건축을 이야기하면서 보이지 않는 삶과 이야기가 중요하단다. 건축이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은 바로 인문학이다. 프랑스는 1977년 건축법을 제정하면서 건축이 문화의 표현이라며, 문화부 산하 기구에 건축을 포함했다. 건축이, 아파트가 부동산일 뿐인 우리나라에서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논할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우리의 삶의 터전인 도시와 우리는 얼마나 연결되어 있을까? 부동산으로서의, 거주지로서의 도시는 언제든 떠나도 미련이 없다. 우리가 이곳에서 만든 기억과 관계가 없다면 말이다. 그 기억과 관계에 건축은 공간으로서 풍경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소성을 만들기 때문이다. 작가는 영화 <당신은 히로시마>를 얘기하며, 우리의 존재 자체가 모두 하나하나의 도시라고 말한다. 나는 내가 사는 도시가 될 수 있을까? 도시와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공간에서 나와의 연결고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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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도시를 꿈꿨다. 내가 살고 싶은 도시. 4년 전 집을 지으면서 내가 그 집에서 만들어갈 삶을 그려본 것처럼…. 거리에는 서로를 알지는 못하지만, 역사와 삶의 흔적이 흐르는 공간에서 나 홀로 또는 함께 기억들을 쌓아가고, 도시의 건축이 만들어내는 풍경에서 삶의 영감을 얻는. 갑자기 덩그러니 세워지는 도시의 풍경이 아닌 조금씩 도시 사람들을 연결하고 변화하는 풍경이 만들어지는…. 도시와 건축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그런 곳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력이 느껴지는 도시. 내가 도시가 되고 도시가 내가 되는 도시 말이다. 내가 사는 도시 창원, 내가 창원이 되고 창원이 내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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