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와 균형·장단 맞추는 놀이
인간관계, 경쟁자이자 협력자

설날을 맞아 곱게 단장한 처자들이 널뛰기를 하며 즐거워하는 장면이 신문 한 면을 장식하고 있다. 파란 하늘에 빨간 옷고름이 팔랑거리고 옥색 치마폭을 펄럭이며 새처럼 날아오르는 몸짓과 율동을 보고 있자니 그 옛날 정초 풍경이 아련하게 그려진다.

어렸을 적, 정초나 정월 대보름 등 명절이 되면 동네 부녀자들이 모여 수확이 끝난 논밭에 흙을 담은 가마니나 멍석을 말아서 널밥을 만들고 그 위에 널판을 얹어 널뛰기를 했다.

펄쩍펄쩍 뛰며 오르내리는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하던 놀이마저 팽개치고 잽싸게 달려가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허리에 치마끈을 불끈 동여매고 무릎을 굽혔다 펴면서 힘껏 구르면 상대편 처자의 댕기 머리띠가 깃발처럼 하늘 높이 휘날렸다. 공중으로 후르르 솟구쳐 올라 떨어지는 그 반동의 힘으로 이쪽 편 처자가 다시 솟아오르며 치맛자락이 꽃처럼 활짝 펼쳐질 때면 구경꾼들은 탄성을 질렀다. 이처럼 여인네들이 널빤지 위에서 춤을 추듯 뛰고 놀았으니 도판희(跳板戱) 또는 판무(板舞)라고 했지 싶다.

두 여인이 널빤지 위에서 신명 나게 구르고 뛰며 신바람을 더해 갈수록 둘러선 구경꾼들도 덩달아 두 편으로 나뉘어 흥미를 높였다. 서로 어울려 기세를 다투며 "좀 더 힘차게!" 하고 소리쳐 응원하거나 장단으로 흥을 북돋워 줬다.

널뛰기의 유래는 분명치가 않다. 몇 가지 속설이 전해오고 있을 뿐이다. 부녀자의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봉건시대에 울안에서만 지내던 여인네들이 담장 밖 세상을 구경하고 외간남자의 모습도 엿보려고 만들어진 놀이라는 것이다. 담 너머 깊숙이 갇혀 있는 옥중의 남편을 보려는 아내들이 생각해낸 놀이였다는 설도 있다. 편견과 차별에 가로막혀 인간답게 살 기본적인 권리마저 행사하지 못했던 여인들에게 잠시 허용된 날갯짓이었던가 싶기도 하다.

널뛰기는 협력이 경쟁이 되고 경쟁이 협력이 되는 놀이이다. 얼핏 서로 겨루는 게임처럼 보이지만, 상대방이 높이 뛰어오르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단순히 구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상대가 구르기 전에 먼저 뛰어오르거나 굴러주는데도 가만히 서 있으면 널뛰기를 할 수가 없다. 서로 반동을 이용한다 해도 리듬과 호흡을 맞추지 않고서는 사뿐히 솟아오를 수 없다. 상대방이 높이 솟구쳐 다시 떨어지는 낙차의 크기만큼 내가 솟아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주 보는 상대를 배려하면서 널뛰는 모습을 보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만드는 법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를 높이 띄워 준 만큼 내가 저절로 올라가는 법이니, 자신이 한 치라도 더 높이 솟아오르려면 상대방이 높이 오르도록 힘껏 굴러줘야 한다. 널빤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서로 균형과 장단을 잘 맞춰줘야 하듯 내가 존중받고 싶으면 남을 먼저 존중해야 한다. 결국, 누가 더 높이 오르나 겨루는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협력자가 되어야만 참다운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임을 널뛰기가 말해 준다.

상승과 하강의 반복되는 널뛰기를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오르락내리락 두 동작을 통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허실상배(虛實相配)가 곧 바람직한 인간관계의 기본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선의의 경쟁을 하되 공동체 구성원 모두는 우리의 동반자이자 협력자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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