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되어 버리면 그대와 나는 타인이 된다
2㎞ 거리 좁은 해협 사이 하루 몇번씩 오가는 페리
서로가 너무나 익숙해져 특별함 사라진 관계 닮아

어쨌든, 어쨌든 나는 지금 메시나에 와 있다. 좁지만 결코 좁지만 않은 메시나 해협을 가르고 여기에 와 있다. 귀신에 홀린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맞는지 실감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맞다. 나는 근 두 달 동안 이탈리아 반도를 헤매다가 이곳에까지 와 있다. 이곳이 이탈리아의 영혼이라고 불리는 시칠리아의 관문 메시나(Messina)다.

▲ 메시나행 페리에 승선 중인 여행자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 행렬은 이어진다. /조문환 시민기자

◇해협을 오가는 페리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수많은 화물과 사람, 자동차를 토해 놓고 건너편 빌라 산 지오반니(Villa San Giovanni)로 건너가는 페리들, 저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늘 그 자리에서 그 일들을 묵묵히 해 내는 저들이 시칠리아의 증인인지 모른다. 조수 간만의 차가 그리 심하지 않아 보이지만 이들의 등짝에는 수천 년 동안 이 좁은 해협을 건넜던 무리들의 그 무게가 잔뜩 실려 있다.

기원전 264년 집정관 아피우스 클라디우스가 이끄는 선단이 카르타고의 침략에 메시나를 구원하기 위해 건넜던 메시나 해협, 먼저 건넌 선발대는 성공적인 도하를 횃불 신호로 보냈다. 이윽고 서로 배를 결합하여 본진이 건넜는데 물살이 거세서 한참이나 떠밀려 내려간 후에 메시나에 당도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치도 떠밀려 내려가지 않았고 화살이 과녁에 꽂히듯 정확히 메시나 항구에 하선했다.

오래전 로마의 역사를 읽을 때 빌라 산 지오반니 항구에 서서 이곳 메시나를 향해 내가 서 있는 것을 상상했었다. 어제 오후 늦게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던져 놓고 항구로 나갔다. 가고 오는 배들을 지켜만 보았다. 바라만 보는 것 외에는 해야 할 것도, 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다른 행위들은 불필요한 겉치레만 될 뿐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장 성스러운 기도가 되고 예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녁 늦은 시간에 다시 그 항구로 나갔다. 숙소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으므로 가는 것은 문제가 안 되었다. 불을 밝히고 오가는 페리들이 부지런히 차량과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아침 이른 시간에도 또 나가 보았다. 떠오르는 태양빛에 메시나 쪽 시가지 건물들은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아직 빌라 산 지오반니는 완전히 밝지도 않았다.

◇밀항자에게조차 절망적인…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빌라 산 지오반니 항구에 나와서 메시나로 갈 배를 기다리는데 항구의 한편 빈터에서 흑인 청년 둘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바다 건너편 메시나 풍경을 찍으려니 다가와서 자기들도 찍으라고 했다. 이들은 가나에서 온 아이작과 기니에서 온 에브라임인데 열여덟 살 동갑내기였다.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이 수준급이었다.

이탈리아까지 어떻게 왔느냐? 왜 왔느냐? 언제 돌아 갈 것이냐? 물으니 다 알면서 왜 그런 것을 불편하게 묻느냐는 표정으로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그 웃음이 싱겁고 해맑았다. 잠은 남의 집 창고 같은 데서 자는데 아직 1년이 넘었지만 일이 없어서 그냥 놀고 지낸다고 했다. "내가 보니 여기는 일거리가 없던데 건너 메시나로 가는 것 어때?" 하니 안 그래도 그래 볼 참이라고 했다.

수백 대의 차를 싣는 페리는 이 좁은 메시나 해협에 맞지 않을 만큼 컸다. 갑판에서 건너편 메시나를 보고 있는데 언제 왔는지 바로 손으로 건물들을 잡을 만큼 가까이 와 있었다. 말 그대로 미끄러지듯 왔다. 메시나를 통해 넘어오는 시칠리아의 물동량은 대부분 빌라 산 지오반니를 통해서 통관되는 듯한데 그에 비하면 이 동네는 매연과 쓰레기만 먹는 도시 같았다. 아침에 등교하는 여학생 세 명을 붙잡고 이 도시의 유명한 곳을 알려 달라고 했더니 서로 상의를 한 끝에 쇼핑센터 하나가 있다고 했다. 내가 쇼핑센터 보러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닌데 다른 것 없느냐고 하니 학교 가야 한다고 줄행랑을 쳤다.

메시나에서 짐을 풀어 놓고 시내로 나오니 길거리 곳곳에 흑인 친구들이 모자며, 별 필요 없는 기념품을 팔기 위해 좌판을 벌여 놓은 것이 보였다. "저 녀석들 아이작과 에브라임도 여기 오면 저런 것 하는 거 아냐?" 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 차라리 잡부를 했으면 했지 저런 것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지만 말이다.

인터넷에 빌라 산 지오반니를 입력하니 딱 두 줄로 설명을 해 놓았다.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현, 레조 디 칼라브리아 현 서부의 도시, 인구 1만 1000명, 메시나 해협 북쪽 끝 가까이에 있는 항구로 시칠리아 섬으로 가는 도선장." 이것이 전부다. 맞는 말이지만 어째 좀 마음이 찡했다.

저녁 먹을 곳이 변변찮은 곳, 아이들이 여행객에게 쇼핑센터를 유명한 것으로 소개해야 하는 곳, 이방인인 내가 보기에도 기차역과 페리 선착장 밖에는 구경할 것이 없는 곳, 밀항 온 흑인들까지 1년 넘게 누울 자리는 고사하고 막노동도 할 것이 없는 곳, 이곳이 빌라 산 지오반니였다. 내가 그토록 와서 서 보고 싶은 곳이 이런 곳이었다.

▲ 아프리카에서 온 아이작과 에브라임. 빌라 산 지오반니 항구에 나와서 메시나로 갈 배를 기다리며 바다 건너 풍경을 찍으려는데 이들이 자기들도 찍으라며 말을 건넸다. /조문환 시민기자

◇여행과 일상

일상이 되어 버리면 타인이 되고 감각을 무디게 할 우려가 다분하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근 석 달을 보내고 있는 동안에 내가 만나는 이탈리아가 나도 모르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오기 전과 초창기 여행 때에 오롯이 내 속에 특별하게 자리 잡았던 이탈리아가 점차 일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앞으로 약 두 주간 머물 시칠리아도 내 관심으로 급속히 다가왔다가 급속히 빠져나가는 사리 무렵의 밀물과 썰물처럼 그렇게 허황되게 가슴을 후벼 파고 나가 버릴 것이다.

너무 가까이 있다는 것도 그 관계가 일상이 되어 버려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얼마나 소중한지 망각하게 만들어 버린다. 불과 2km 떨어져 있는 메시나와 빌라 산 지오반니는 꼭 그런 관계 같아 내 가슴이 서늘해지곤 한다. 일상의 삶은 바람도 잔잔하고 파도도 없으며 탄탄함과 견고함이 문지기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잔잔함과 견고함이 화석처럼 무뎌질 때에는 일상이라는 것은 있어도 없는 것 같은 타인이 되어 버린다.

여행은 타인이 된 나를 연인으로 맞아들이는 일이다. 그곳은 사면이 가로막힌 선실과 같은 곳이면 더 아름다울 것이다. 대화할 상대라고는 나밖에 없는 감옥과 같은 곳이면 더 명징할 것이다. 읽을 책이라고는 없는, 있어 봤자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선반에 올려놓은 작은 묵상 시집 정도면 더 기도하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괴테와 나는 분명 타인은 아니다.

공놀이를 같이 했던 아이작과 에브라임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피부색과 관계없이 같은 형제야." 아이작이 응수를 했다. "그래요 맞아요 형제." 5유로에 형제를 샀다. 이 둘이 서로 국적은 달라도 형제라고 느끼며 서러운 타국 생활을 견뎌 내면 좋겠다. 내게 언제 집으로 가느냐고 묻는다. 갈 집이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어떤 것일까? 일상이 되어 버리면 타국도 타인이 될 것인즉 타인 되기 전에 나는 집으로 갈 것이다.

내가 묵고 있는 메시나의 via I Settembre 156번지에서 어제 묵었던 빌라 산 지오반니의 via Marcone 46번지가 아른거린다. 밝고 정갈한 156번지, 매캐한 담배 연기의 46번지, 이들도 서로 마주보며 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형제라고 말하면서 손 맞잡고 마음이 서로 통하면 좋겠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