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충우돌 청년들의 3년간 기록
귀농 꿈꾼 유지황 씨와 친구들
자금·기술 부족 어려움 딛고
진주 정촌에 주택 3채 등 지어
〈코부기…〉 펴내 방법 공유

2016년 여름 청년 주거 문제 대안을 찾겠다며 진주시 정촌면에 직접 집을 짓기 시작한 젊은이들이 있었다. 좌충우돌하며 결국은 그들만의 주택을 지어낸 이들이 지난 3년간 기록을 책자 형태로 발간했다. 지난달에 나온 <코부기 매뉴얼>(팜프라, 2019년 1월)이다. 코부기는 협동이란 뜻의 영어 '코퍼레이션'의 첫 발음 '코'와 거북이를 합친 거다. 거북이 등껍데기가 그렇듯 쉽게 옮길 수 있으면서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을 짓는 게 이들 목표였다.

◇코부기의 탄생

농부가 되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있었다. 생각만 간절할 뿐 막상 농촌에 가서 살려니 기반도, 자본도 받쳐주지 않았다. '다른 나라 청년들은 어떻게 농촌에 정착해서 살고 있을까.' 이 질문으로 시작한 세계 여행, 여러 나라의 청년 농부들을 만나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를 살펴봤다. 이들의 여행은 <파밍보이즈>(변시연, 장세정, 강호준 감독)란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졌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 현재 청년인문둥지제작소 '코부기'와 청년들을 위한 농업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활동하는 '팜프라' 그룹 대표인 유지황(32) 씨가 있다.

그가 보기에 농촌 생활을 포함해서 모든 생산 활동을 하려면 안정적인 거주지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 '코부기 1호'를 짓고 있는 청년들이 설계 도면을 보면서 건축 방식을 의논하고 있다. /팜프라

"촌라이프를 시작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생활 반경을 결정짓는 집을 구하는 것이다. 집이 해결되면 땅을 빌려 농사를 짓거나, 배를 빌려 어업을 하거나, 산을 빌려 임업을 할 수 있다. 또는 많은 생계활동을 하지 않아도 적게 소비하며 자신의 삶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집을 구할 돈이 없던 유 씨는 '자취방 보증금 500만 원으로 집을 짓자'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단 집 짓는 경험을 하려고 온갖 일을 했다. 한옥 짓는 곳도 찾아가고 흙집을 짓는 곳에서도 일했다. 패널이나 컨테이너 주택도 여러모로 연구를 했다.

▲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뜻있는 청년들이 코부기 1호를 짓고자 모였다.

"그렇게 흘러 흘러 경량 목구조를 알게 됐다.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나무로 된 집을 갖고 싶었다. 또 혼자서도 지을 수 있는 구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량 목구조는 자재의 크기가 크지 않아 혼자 혹은 두 명이면 짓는 게 가능했다. 자재의 규격도 정해져 있어 가공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됐다.

그는 바로 지리산 목조 주택학교에 들어가 목구조 만들기를 배웠다.

"수업을 듣고 난 후 확실히 알게 된 게 있었다. 500만 원으로는 도저히 집을 지을 수 없다. 기술력도 턱없이 부족했다. 목구조는 만들 수 있지만 기초, 전기, 수도, 배관, 내부 인테리어 등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고민 중에 만난 게 진주에 있는 코앞건설 대표 박범주 건축가였다. 그는 건축이라고는 전혀 모르던 유 씨와 친구들에게 조언자 노릇을 하며 그들의 첫 집짓기에 투자까지 했다.

"설계가 진척되면서 비용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건축 현장이나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집을 지어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 고민을 꿰뚫어 본 건축가님이 웃으며 집 지을 때 들어가는 1000만 원을 투자해주겠다고 하셨다.

큰 지지세력을 만난 유 씨와 친구들은 2016년 9월 5일 코부기 1호 집 짓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코부기 주택 3채와 미니 3동을 건설했다. 그동안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코부기 작업 현장에 다녀갔다. 그리고 유 씨와 친구들은 이런 성과를 공유하고 싶어졌다.

"내 집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와 같이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촌라이프를 하고 싶은 청년들이 직접 집을 지을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코부기 매뉴얼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 완공된 청년 대안 주택 코부기 1호.

◇생각만큼 잘되지 않아 힘들던 집 짓기

<코부기 매뉴얼>에는 집을 짓는 과정 전후에 했던 모든 일을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적어 놨다. 그래서 적어도 이론상으로 설명서대로 따라하면 집을 한 채 지을 수 있다.

첫 작업인 코부기 1호는 6평짜리 초소형 주택이다. 한 달이면 지을 줄 알았는데, 이듬해 2월에야 끝났다. 생전 처음 집을 지어보는 것이다 보니 진척이 더뎠다.

"집을 짓기 시작하기 전에는 많이 계획하고 공부하고 생각하다 보니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작업이 시작되고 현장이 돌아가자 '멘붕'이 왔다. 설계한 도면이 엉망일 때도 있고 상황에 따라 도면이 바뀌기도 했다. 계산 값과 실측값이 다르고, 몇몇 공구는 다뤄본 적이 없고, 계획했던 공정대로 하루가 끝맺음 되지 않는다.

이렇게 완성된 집이 혹시 허술하지는 않을까 싶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꽤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무엇보다 직접 지은 집이고 원하는 구조에서 살 수 있어 좋다. (중략) 답답한 원룸에 살던 때와 다르게 주변 경치가 보이고 덱이 있는 집에 살다 보니 우울하고 슬픈 감정을 좋아하던 것에서 감정적 변화가 찾아왔다. 코부기에 살면서부터 우울하거나 슬픈 감정들이 찾아와도 오래가지 않았다.

물론 아직 고쳐야 할 부분은 많다. 하지만,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는 이제 충분히 알아차릴 정도로 나름의 경험과 기술력이 쌓였다.

◇집을 지으며 배운 것들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

유 씨와 친구들은 집을 짓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부쩍 성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옛말에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집 짓는 과정을 통해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어른들에게 전달받은 것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게 됐다.

이들의 다음 행보는 지금까지 경험을 토대로 코부기 주택을 모듈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화장실, 거실, 주방 등 주택 일부분을 블록화해서 원하는 방식으로 조립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또 발표한 코부기 매뉴얼 초안을 백과사전처럼 발전시킬 생각이다. 그리고 야심 차게 계획 중인 팜프라촌을 올해 안으로 만들 예정이다. 이는 농촌을 꿈꾸는 청년들이 자신의 삶의 방식을 찾으며 살아갈 수 있는 일종의 공동체 자급자족 마을이다.

이렇게 놀라운 일들을 벌이는 젊은 친구들을 가까이에서 계속 지켜볼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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