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죽음 뒤 쏟아지는 응급의료 개선책
누군가 또 과로사하기 전에 실현되기를

지난 4일, 일반인에게는 낯선 이름의 한 의사가 사망했다.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사인은 과로사로 추정된다. 고 윤 센터장은 닥터헬기와 응급의료상황실 운영 등 국내 응급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힘을 쏟은 인물이다. 중증응급환자를 수용해 줄 병원을 섭외하고 이송체계를 정비하는 일에 헌신했다. 그리고 심장질환이나 외상 등 응급환자들이 한 지역 내에서 모든 치료를 완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응급의료체계 개선에 목소리를 냈다.

중증외상 분야 외과 전문의 이국종 교수는 저서 <골든아워>의 한 챕터에 '윤한덕'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그에 대해 이야기했다.

'2008년이 끝나가던 겨울, 중앙응급의료센터로 윤한덕 센터장을 찾아갔을 때 그의 시선은 내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는 보고 있던 서류에서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날카롭게 물었다.

-지금 이국종 선생이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동안에 아주대학교병원에 중증외상 환자가 갑자기 오면 누가 수술합니까?

(중략)윤한덕은 그때의 응급실을 '지옥' 그 자체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밀어 넣었을 것이었다. 지옥을 헤매본 사람은 셋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 화염을 피해 도망치거나 그 나락에 순응하거나, 그 모두가 아니라면 판을 뒤집어 새 판을 짜는 것. 떠나는 것도 익숙해지는 것도 어려울 것이나, 윤한덕은 셋 중 마지막을 택했고,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맡아 전국 응급의료 체계를 관리하고 있다.'

윤 센터장이 주장했던 응급의료체계 선진화는 여러 벽에 가로막혀 그를 힘들게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사람이 앞다퉈 낯선 이름의 그를 칭송하고 결의에 찬 모습으로 응급의료 개선책을 발표하고 있다. '영웅'의 이름에 편승하려는 얕은 속셈일까.

중증 응급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으로 이송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면 살릴 수 있는 환자도 살릴 수 없게 될 수 있다. 병원을 옮긴 중증 응급환자는 이동하지 않은 환자보다 사망률이 4배나 더 높다고 한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동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립중앙의료원으로부터 제출받은 '환자 거주지 기준 시·군·구별 급성심근경색 환자의 응급실 전원 현황'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급성심근경색 환자 2만 6430명 중 4.6%(1222명)가 응급실 내원 후 다른 응급실로 전원됐다. 이는 급성심근경색 환자가 병원을 옮겨다니다가 치료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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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응급의료체계 개선 대책이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지면 사라지는 신기루가 돼서는 곤란하다. 윤 센터장이 생전 간절히 이루고자 했던 '적절한 환자를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의료기관에서 치료할 수 있도록'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응급 환자들이 병원을 옮겨다니다 골든아워를 놓쳐 소중한 생명을 잃기 전에. 그리고 도망치지도, 익숙해지지도 않은 또 다른 누군가가 생명을 태워 일하다 과로사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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