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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발 딛고 일할 권리

고용으로부터 소외되는 노동자들
반인권 해결책은 간접고용 금지뿐

정문순 문학평론가 webmaster@idomin.com 2019년 02월 12일 화요일

달인을 다루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다. 달인의 손놀림이 가능해지려면 수천 번, 아니 수만, 수십만 번 넘게 같은 동작을 되풀이해야 한다.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일을 의식하지 않고도 일이 되는 때가 온다. 손이 풀린다고 하는 경지다. 육체노동을 일컬어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이 없는 노동, 나의 지시와 관여를 받지 않고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노동. 그러한 자동적인 반복 속에서 노동자는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느낀다. 자기 소외다. 일에 숙달될수록 이런 경향은 심해진다.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찰리 채플린이 시계 나사 조이는 일을 자꾸 하다가 사람까지 조이려고 하는 대목은 자기 소외의 극단적인 모습이었다. 자신과 노동이 한 몸이 되지 못하고 자신의 노동에서 스스로 이탈되는 경험은 근대 노동자의 극복 과제였다. 노동자가 자신과 노동의 분리를 막으려면 즉 미치지 않으려면 일에 너무 빠지지 말아야 했다. 일을 지나치게 하지 않을 권리, 적절한 노동시간 확보가 관건이었다.

현대는 근대보다 더 발전한 시대답게 노동 소외 양상도 이전과 달라졌다. 이전의 노동자는 자신에게 일을 시키는 회사와 자신이 소속된 회사만큼은 다르지 않았다. 찰리 채플린이 온종일 시계 나사를 죈 공장의 사장과, 얇은 월급봉투를 주는 사장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둘을 나눌 수 있는 게 가능해졌다. 지금 시대 같으면 채플린은 사장과 동료들이 자신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공장에서 파견 노동자로 일하면서 직접 고용된 그 공장의 동료 아닌 동료들을 부러워하는 신세가 됐을지 모른다. 노동으로부터의 자기 소외는 둘째 치고 일터, 동료, 연장, 기계, 작업복 중 어느 하나에서도 소속을 인정받을 수 없다. 고용으로부터 노동자가 소외되는 것은 연장을 사람에게 쓰려고 드는 시계노동자 못지않게 무서운 결과를 부른다. 노동자는 분열되고, 업무의 외주화로 여럿이 생겨난 사측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서로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구조 속에서 노동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이제 채플린은 연장 들고 미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원청이 파견 업체와 계약을 끝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미친 노동은 허공에 뜬 노동이 되었다. 발을 디딜 안전판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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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텍 노동자들이 굴뚝 농성을 끝내고 땅에 내려오기까지 426일이 걸렸다. 파인텍 노동자들은 직접고용의 전망을 얻은 뒤에야 지상의 노동자로 돌아왔다. 그러나 고 김용균은 그렇게 되지 못했다. 이 땅에 비정규직 중의 비정규직이라는 수많은 간접고용 노동자가 있다. 업종도 회사 성격도 가리지 않는다. 친환경 물품을 다루는 생활협동조합 iCOOP생협의 직접고용을 주장하는 전남 구례의 구례자연드림파크 파업 노동자들은 지리산 칼바람 속에서 두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다. 구례자연드림파크는 iCOOP생협이 조합원들에게 공급할 물품을 생산하려고 지은 클러스터 단지다. 그러나 자연드림파크 노동자들의 소속은 iCOOP생협이 아니다. 우연인지, 노조 결성 이후 사용자는 이리저리 바뀌었다. 나는 iCOOP생협 조합원이다. 자본주의의 약탈적 경제 생태계를 극복하겠다는 협동조합마저 노동의 비인간화에 앞장서다니, 이 혼란을 종잡기 힘들다. 일하는 사람의 발판을 치운 일터에서 생산된 것은 친환경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반환경과 반인권을 풀 실마리는 간접고용 금지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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