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정고시에 핵심내용 빠져…사유만 구체화·보호 제한적
인권단체들 "노동자 뜻대로 사업장 못바꿔 불공정 근로계약"

이주노동자 권리를 보장하고자 지난 1일부터 시행 중인 개정 외국인고용법 고시에 '사업장 이동의 자유'는 빠졌다.

인권단체는 이주노동자가 요구하는 핵심 사안을 제외한 채 사업장 변경 사유만 구체화해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이번 개정 고시로 '이주노동자 인권을 개선했다고 대내외에 알리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고용허가제로 국내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22만 2374명이다. 2013년 상반기 16만 9131명에서 6년 동안 꾸준히 늘었다. 외국인고용법 제25조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사회 통념상 해당 사업장에서 계속 일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사업장을 바꿀 수 있도록 했다. 고용허가제 비자(E-9)로 입국한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내국인과 동등한 보호를 받지만 한 번 취업한 사업장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만 직장을 옮길 수 있는데, 새 고시는 이를 구체화했다. 우선 이주노동자가 사업주에게 수 차례 임금을 받지 못하면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구체적으로 △월 임금 30% 이상 금액을 2개월 이상 미지급하거나 지연했을 때 △월 임금 10% 이상 금액을 4개월 이상 미지급하거나 지연했을 때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금액을 지급했을 때 등이다. 또 사업주가 성폭행을 했거나 열악한 숙소를 제공했을 때도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 개정 고시에도 이주노동자 불만은 여전하다. 이들이 꾸준히 요구해 온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빠졌기 때문이다. 원하는 대로 사업장을 바꿀 수 없다면 이주노동자와 사업주 간 근로계약 관계가 동등할 수 없다는 게 이주노동자들 주장이다.

사업주가 폭행·폭언을 일삼고 부당한 지시를 내려도 이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현행법에는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사업장을 바꿀 수 있게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법적 보호를 받는 이는 적다. 이주노동자가 한국법을 모르니 사업주가 행한 위법 사실을 체계적으로 입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권익보호를 위한 시민단체 이주공동행동 관계자는 "고용허가제 때문에 국내외적으로 압박을 받는 우리 정부가 '고시를 개정했다'고 생색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고 사업장 변경 사유만 세분화하는 조치로는 결코 이주노동자의 기본권과 노동권을 개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철승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장은 "국내법을 통해 합리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적어도 동일지역과 산업에 대한 사업장 이동은 횟수를 제한하지 않아야 이주노동자 권리가 제대로 보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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