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를 대신하는 대의정치에서 정치적 판단에 따른 표결 등 결정을 할 때 본인임을 밝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말 많고 탈 많은 우리나라 국회도 이것만큼은 지킨다. 국회 홈페이지 표결정보에 들어가 보면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된 법률안, 예산 관련 안건에 찬성·반대표를 던진 의원을 모두 알 수 있다. 각 안건 회의록에도 찬반 의원명단 기록이 남아있다. 그런데 이런 국회를 따라하기 잘하는 지방의회가 가장 기본적으로 본받아야 할 것은 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일 것이다.

경남지역의 시·군의회들은 지난 7월 개원한 이래 열린 의회를 표방하고 있다. 깜깜이 의정활동과 잦은 구설수 등 악화한 여론을 의식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말만으로는 열린 의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지방의회 운영이 투명해지고 의원 각자의 책임성, 유권자 알 권리를 충족하자면 표결실명제는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다.

그러나 지방의회가 탄생한 지 2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 경남지역의 시·군의회 대부분이 이 기본부터 지키지 않고 있다. 표결 수, 기명투표자 및 찬반 의원 성명을 남기는 기록투표를 하는 곳은 경남도의회, 창원·양산·거제·김해시의회 등 5곳뿐이다. 남해군의회가 의회사무국 차원에서 표결실명제 도입을 검토하는 단계일 뿐 대부분 시·군의회에서는 아예 논의조차 없었다는 것은 하려는 의지마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열린 의정과 책임 있는 의원의 면모를 볼 수 없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며 의원 개인의 행위일 뿐 의정활동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로 지방자치를 표방했고 실제로 지방자치를 위한 정책들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권한이 커지면 책임도 같이 무거워져야 한다. 언제까지 의회라는 권력 뒤에 숨어 무기명 놀이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유권자는 의원이 어떤 표결을 했는지를 알 권리가 있으며 의원은 자신의 판단을 유권자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 이것이 정착돼야 정책과 정견이 있는 선거가 될 수 있고 금권과 인연의 정치를 끝낼 수 있다. 표결실명제를 미룰 명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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