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한기 수입원 곶감 만들어 팔고
농사 공부하며 밭 지도도 그리고

겨울은 자연과 농부가 쉬어가는 계절이다. 농사가 한가한 때라서 '농한기'라 한다. 그렇다 보니 "겨울에는 뭐 해요?"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다른 철에는 굳이 묻지 않아도 농사일로 바쁜 줄 알지만 일이 없는 겨울에는 무얼 하고 지낼까 궁금한 모양이다.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곶감을 포장하느라 농한기 같지 않았다. 농부들에게 겨울은 일도 없지만, 수입도 없는 철이다. 그래서 우리 식구는 곶감을 만들어 팔고 있다. 보통 설날 전에 모두 판매가 된다.

가을걷이를 마치고 12월에 곶감을 깎는다. 옥상에 곶감을 말릴 수 있는 막을 지어 놓았다. 그 안에 깎은 감을 걸어서 50일 정도를 말린다. 그 뒤에 곶감을 내려서 여러 번 손으로 만지며 모양을 잡는다. 곶감 상자에 담는 일까지 하려면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솔직히 도시에 살 때는 '곶감이 왜 이렇게 비싸?'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곶감을 만들어 보니 비싼 값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곶감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정성도 있지만, 포장할 때 드는 상자 값과 택배비도 무시하지 못한다. 무엇이든 과정을 겪어 보아야 그 값이 비싼지, 싼지, 적당한지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이제 곶감 일을 마치고, 겨울다운 한가함을 누리고 있다. 틈틈이 부엽토를 모으려 산에 간다. 부엽토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가 썩어서 된 흙이다. 부엽토에는 양분이 많아서 땅을 이롭게 한다. 부엽토를 밭두둑에 덮어 주면 수분을 조절하고, 미생물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 밭 준비를 하는 봄에 부엽토까지 하려면 정말 정신없이 바쁘다. 그래서 겨울에 미리 부엽토를 모아둔다. 움직일 일 없는 겨울에 차갑고, 깨끗한 공기 맡으며 땀을 흘리고 나면 속까지 후련해지는 개운한 느낌이 든다. 더구나 바쁜 농사일 가운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 여유롭기도 하다.

또 한 해 농사를 준비하면서 공부도 한다. 여섯 번째 농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도 배우고, 시도해 보아야 할 것이 많다. 어디에 무엇을 심을 것인지 밭 지도를 그리는 일도 중요하다. 서로 성격이 맞지 않는 작물도 있고, 함께 심어서 좋은 작물도 있다. 같은 과 작물끼리 연작을 하면 안 되는 작물도 있어서 세심하게 살피면서 밭 지도를 그려야 한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어르신들은 머릿속으로 척척 밭 지도를 그리지만 나는 아직 책을 펼쳐 보아가며 공부를 해야 한다.

밭 지도를 그리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예슬아, 지금 뭐 해?" "밭 지도 그리려고 책 보고 있어." "밭 지도? 그런 것도 그려? 막 심으면 되는 줄 알았지 밭 지도라는 게 있는지 몰랐네. 농부도 겨울이라고 놀기만 하는 게 아니네." "이게 노는 거지 뭐." 보이지는 않았지만 친구는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듯했다. 사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공부와 노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재미'의 색깔이 조금 다른 것뿐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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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겨울 동안은 친구들을 만나러 여행을 해볼까 한다. 놀러 간다는 말만 해놓고, 아직 한 번도 놀러 가지 않은 곳이 많다.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서울까지…. 아직 정확한 계획을 짜지는 않았지만 친구 여행을 하려면 전국을 거의 다 돌아야 하지 싶다. 새로운 길 위에서 반가운 친구를 만나 이야기 나누고, 많이 웃고. 그렇게 돌아오면 다시 씩씩하게 농사를 지어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밭에 나가지 않는 겨울에도 봄을 기다리는 농부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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