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연구기관 보유한 값비싼 기기들
누구나 필요시 이용할 수 있어야 '가치'

작년 11월 말, 일본 간사이지역 여러 대학의 특색 있는 교육혁신 프로그램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세계 최초로 참치양식에 성공한 긴키대학은 대학의 이름을 걸고 양식어 레스토랑을 운영해 인기를 끌고 있었다. 고베대학의 글로벌 챌린지프로그램도 흥미로웠으나, 간사이대학 이노베이션창생(創生)센터의 산학연계 프로그램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이곳에 입주한 벤처기업들이 대학에서 제공한 시설과 첨단 과학실험 장비는 물론 대학이 보유한 신기술(Seeds)을 바탕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신상품(Needs)을 개발·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약개발에 포항공대의 방사광 가속기가 큰 역할을 하는 것처럼, 기초과학 연구는 물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려면 반드시 그에 적합한 도구가 필요하다. 나노과학시대인 지금, 원자수준에서 물질의 표면과 구조, 물성 등을 분석하려면 전자현미경(SEM)이나 원자현미경(STM, AFM), 핵자기공명장치(NMR)와 같은 실험기기는 필수장비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대학은 물론 과학교육원이나 과학영재고·과학고 등에서도 이에 버금가는 첨단 장비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첨단 장비들은 대부분 소위 '억(億) 소리'가 나는 고가장비이기 때문에 연구실마다 갖추기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부분 대학에서는 이런 값비싼 장비의 중복투자를 피하고, 학내 구성원들의 공동이용과 안전한 연구 환경을 만들고자 공동실험실습관을 운영하는 곳이 많다.

일본에서도 10여 년 전부터 대학이 보유한 장비들의 개방과 공동이용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구입한 고가 장비들의 가동률이 너무 낮아 제대로 활용도 못 하는 사이에 노후화하고 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대학 실험장비들이 폐쇄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운용되는 문제점을 간파한 교토대학 산관학연계본부의 나가하라(中原有紀子) 연구원은 대학이 보유한 엄청난 과학지식과 첨단 장비들을 학교 밖의 기업에서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중개해 장비 가동률을 높임으로써 대학과 기업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공용비즈니스 모델, 즉, '테크노 플랫폼' 구축사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일본 대학이 보유한 첨단 장비들의 가동률이 낮은 이유로, 장비를 운용할 수 있는 오퍼레이터(operator)가 한정돼 있다거나, 유지보수(maintenance)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 당장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고, 무엇보다 사용자들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학의 공동실험실습관을 비롯해 여러 교육·연구기관들이 보유한 첨단 과학실험 기기들의 가동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최근에 출범한 어느 지방 과학기술원에만 무려 2000억 원에 달하는 최첨단 실험기기가 투입됐다고 한다. 이렇게 막대한 국가 예산이 들어간 기기들은 모두 우리 국민의 자산이다. 또, 모든 첨단 실험장비는 대학의 연구자는 물론 벤처기업가, 고등학생을 비롯한 아마추어 연구자 등 누구나 필요한 때에 이용할 수 있어야만 그 가치가 있다. 이런 공공재를 소유권을 가진 특정기관에서만 독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세현_1.jpg

대학과 교육·연구기관 등 곳곳에 산재한 '첨단 과학실험 장비지도'를 만들고, 첨단 장비는 물론 유지보수문제까지 서로 공유할 수 있는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하자. 그러면 이번에는 과학자들이 더 새로운 연구결과와 기술혁신으로 응답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