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수묵으로 다진 민족혼 강렬한 오방색으로 거듭나다
평생 '일본풍 그림'꼬리표
말년 5년간 선뵌 채색화
'새로운 한국화 양식'극찬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내고 박생광(1904∼1985). 그가 말년 5년 동안 선보인 강렬한 색채의 그림은 박생광에게 새로운 한국화를 수립한 화가라는 명성을 안겼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익숙한 그림도 '무당', '제왕' 같은 그림이다. 하지만 17세에 일본 유학길에 올라 그림을 그렸던 그의 작품 세계를 고려하면 마지막 5년이 아니라 그 앞의 작품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은 '내고 박생광의 삶과 예술'이란 주제의 '내고 박생광-대안동 216번지에서'전을 내걸었다.

▲ 내고 박생광.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50여 년의 수묵화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2층에 들어서면 '의랑순국지도', '진주성 북장대' 등 진주를 그린 박생광의 작품을 먼저 볼 수 있다. 논개를 떠올리게 하는 '의랑순국지도'를 보면 인물 표현이 아주 익살맞다. 박생광은 역사적 사건을 기교적이고 아주 세밀하게 묘사했다. 종이에 연필로 그린 여러 풍경화도 박생광이 북종화풍의 산수화를 그렸음을 보여준다. 또 수묵담채화는 묵법이 농익었고 짙고 옅은 필묵으로 농담의 변화를 모색했다.

▲ 진주를 그린 작품 '의랑순국지도'.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또 그는 촉석루와 서장대, 뒤벼리 등 진주 풍경을 자주 그리며 개천예술제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는 평생 "일본 화풍이다", "왜색이다"라는 평을 들었다. 1977년 일본에 갔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개최한 개인전에서도 평단의 목소리는 같았다.

이규석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작품을 자세히 보면 같은 수묵화, 채색화라도 선과 기교가 다르다. 왜색이라는 평과 싸운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가 덧씌운 그에 대한 편견이 박생광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박생광은 모란, 새, 물고기 등을 그리며 생계를 이었다. 잘 팔리는 작품을 그린 것이다. 그러면서 작업실 한 편에서 채색화를 연구했다. 무속신앙에 큰 관심을 두고 탈춤, 성황당, 무당 등을 소재로 고민했다.

▲ '십이지 말, 개, 원숭이, 용, 뱀'.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그리고 1980년 무속과 역사인물화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고향 진주가 근원이자 바탕"

1981년 백상기념관에서 열린 박생광 개인전. 모두가 "새로운 양식의 한국화가 탄생했다. 박생광 양식이다"고 입을 모았다.

단청으로 그린 화려한 채색화는 국내 미술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노 화가였던 박생광은 민속적 생명력을 주축으로 '민족혼의 화가'로 불리게 될 여러 작품을 그려낸다.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무당6', '제왕', '무속12', '무속16' 등 4점은 화가의 즉흥성이 돋보인다. 선이 일그러지고 형태가 불확실하지만 오방색은 감각적으로 쓰였고 그림은 큰 에너지를 내뿜는다.

▲ 강렬한 색채가 돋보이는 '제왕'.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이들 작품은 여전히 연구할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004년 서울, 경기, 경남 등이 앞장서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은 지난해 11월 박생광이 운영하던 대안동 216번지 청동다방을 기억하며 다시 작품을 내보였다.

이에 대해 김수현 경상대 교수는 "그 누군가가 이렇게 큰 변신을 갑자기 할 수 있을까. 박생광에게는 여러 연유가 있지만 혁신적 한국화의 바탕에는 진주 시절 그림이 있다. 이번 전시는 박생광 미술의 원류를 찾아가는 기획전이다"고 평했다.

▲ 한국적 정서가 담긴 '나녀'.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24일까지 전시. 입장료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 문의 055-749-3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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