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이야 어떻든 아늑·튼튼했던 옛집
투자·투기대상으로만 보는 요즘 집

작은 설날 찾은 고향 마을은 명절답지 않게 고즈넉했다. 그새 빈집이 두엇 더 늘었고 설을 쇠러 온 자식 놈들 자동차도 눈에 띄게 줄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십수 년 전만 해도 너무나 귀에 익은 계집아이들 고무줄놀이 노랫소리가 골목 담장을 넘었다. 사내아이들 화약총 소리에 까치가 자발스럽게 푸드덕 날아오르며 깍깍거렸다. 안산 등성이 위로 가오리연이 꼬리를 하늘거리고 목줄이 한 가닥 끊어졌는지 방패연은 맴을 돌았다. 까치가 울면 동구 밖을 살피던 그 부모님들이 되레 도시에 사는 자식 놈들 집으로 설을 쇠러 마을을 비웠다.

그러고 보니 늙은 팽나무 꼭대기 꼴머슴 나뭇짐보다 큰 까치집도 비었다. 우리네 시골 옛집과 새가 지은 집은 참 많이 닮았다. 우선 겉으로 보기에 초라하다. 지붕 낮은 흙담 초가나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얽은 까치집과 짚과 흙으로 이겨 만든 제비집은 정말 볼품없다. 그러나 집안을 들여다보면 아늑하고 튼튼하다. 기둥과 보는 서로 맞물려 서까래를 지탱하고 온돌은 따뜻하다. 까치집도 겉으로 보기엔 그저 나뭇가지를 모아 놓은 것 같지만 무척 튼튼하다. 어느 핸가 키 큰 미루나무가 꼭대기에 까치집을 얹은 채 태풍에 쓰러졌다. 부서지지 않은 게 신기해 살펴보니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서로 끼워 넣어 대바구니 짜듯 엮어 놓았다. 게다가 내부는 마른 지푸라기와 자신의 털로 꾸며 겉과는 달랐다.

햇볕 따가운 봄날 "할배~ 보리 베요?"라고 들리는 휘파람새 지저귐이 가득한 들에서 보리를 베다 보면 더러 종다리 집이나 개개비집이 굴러 나오곤 했다. 마른 풀로 지은 사발 모양의 그것들도 생각보다 질기고 튼튼한 집이었다. 그런데 거의가 빈집이었다. 알을 낳고 품어서 새끼를 낳아 기르다 날갯짓을 하게 되면 그렇게 애써 만든 멋진 집을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나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새끼들이 자라 짝을 찾으면 근처에 다시 집을 지었는데 그런 새집이 둥지다. 예전에는 사람 사는 집도 둥지 같았다. 형제가 많은 집이면 맏형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집에서 동생들을 거두었다. 동생들은 성년이 되면 남의 집에 머슴을 살거나 제법 전답 문서가 있는 집이면 제 집 일을 돌보았다. 그러다 나이가 차 결혼을 하게 되면 제금을 내어 집에서 내보냈다. 그동안 형이 관리하던 머슴 새경에 몇 마지기 뚝 떼 내어 주었다. 동생이 근처 텃밭을 다져 주춧돌을 놓으면 마을 사람들이 달려들어 기둥을 세워 벽을 쳐서 구들을 놓고 지붕을 얹었다. 제금 난 집에 가마솥이 걸리고 성주단지를 모시는 날이면 풍물을 치고 잔치를 열었다. 새로 둥지를 튼 그이는 아버지와 형이 그랬듯 자식을 낳아 키우고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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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나 함께 하자 초대한 손님들 대부분 첫인사가 "몇 평이죠?"이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얼마 주고 샀는지 아니면 전세를 얼마 걸었는지 월세는 얼만지를 궁금해 한다. 고급 마감재를 쓰다듬고 최신 편의 시설을 눌러본다. 아이들 방문이 열렸는지 닫혔는지를 보지 않고 몇 등 하는지 묻는다. 바구니에 담긴 짜고 있던 남편의 목도리는 보이지 않고 그의 연봉을 알고 싶어 한다. 집을 둥지로 보지 않고 투자나 투기 대상으로 보고 있다. 둥지가 아닌 집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평생을 집에 얽매여 산다. 집이 없는 사람은 셋방살이 설움을 벗어나려 저축을 하고 빚까지 내어 평생을 갚아나간다. 집이 있는 사람도 더 좋고 넓은 집을 가지려 아등바등 이다. 집이 두세 채씩 있는 사람은 차액을 노리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멀쩡히 서 있는 집을 쓸데없이 사고판다. 만들어 쓰다 보면 날이 갈수록 값이 떨어져야 당연한데 거품 가격으로 턱없이 오르고 널을 뛰기도 한다. 이런 이들 때문에 주택 보급률은 100%가 넘어선지 이미 오래됐건만 자가 보유율은 아직도 절반을 맴돌고 있다. 집은 한 채씩 나누고도 남지만 제 집을 가진 이는 열에 다섯이란 소리다. 집착하는 그들에겐 작고 초라하지만 아늑하고 꼭 품어 안은 둥지가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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