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그대로지만 역할은 늘어
출산·양육의 무게 강요하는 사회

지난해 결혼은 했지만, 평일에는 혼자 지내는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기에 아직은 기혼도 비혼도 아닌 양쪽을 모두 아우르는 주변인(?) 정도 되겠다. 그러나 나는 엄연한 한국의 '기혼' 여성이기에 그동안 결혼이라는 제도를 10개월 동안 몸소 겪으며 보고, 느낀 것들을 말해보려 한다.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내가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소비해왔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내가 불편하지 않거나, 혹은 꼭 필요한 만큼 보내왔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달라졌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가족들과 보내야 하는 절대 시간은 의무적으로 존재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누군가를 챙기고, 그들의 끼니를 신경 쓰며 몇 박 며칠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종종 불편했다. 한 달에 한 번, 적으면 두어 달에 한 번씩 나는 시댁과 친정 혹은 친척들의 집을 번갈아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에서 이박 삼일씩 불편하고도 어색한 시간을 보내왔다. 그러면서 느꼈다. 나는 지독하게도 내 마음대로 하고 나만을 위해 살아왔었음을….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사뿐히 안착하기 위해서는 아마 이 어색하고도 힘든 시간들을 편한 시간으로 바꿔 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에게 오로지 '나'로만 기능했던 시간은 결혼 후 며느리, 처형, 형님, 아내 등의 역할로 확대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그러나 역할이 늘어난 만큼 시간은 늘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때로는 나 자신을 아주 고독하게 한다는 사실도 미리 알려주고 싶다.

결혼하고 또 가장 많이 느낀 것 중 하나는 결혼 후 아이가 없는 기간에 대한 비정상적 시선들이다. 결혼 후 출산이라는 사회적으로 아주 당위적인 코스(?)는 결혼 후 아이가 없는 기간이 지속하는 순간 그 기간은 비생산적이고 가치 없는 시간으로 평가받기 일쑤라 서운할 때가 많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는 이 시간이 서로에게 매우 가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서로를 위해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지금의 시간은 '아직 아이 낳기 전'의 시간일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는 오직 출산을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인지, 기성세대의 사고가 아쉽다. 결혼 후 미출산 혹은 결혼이 없는 출산은 불행한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하고 때로는 무례한 것인지를 우리는 자각해야 한다.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제발 아이 언제 가질 건지 묻거나 빨리 가져야 한다고 훈수 두지 말자. 구태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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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몸은 하나이고 회사에서는 며느리의 역할이 늘어났다고 해서, 심지어는 엄마라는 역할까지 지워진다 해도 사원의 역할을 줄여주지 않았다. 다만, 한 가정에 아이가 생기는 순간 오직 여성에게만 일정 기간 엄마 역할에 전념하기를 강요하듯 출산·육아휴가가 주어지고, 남성에게는 아직 자유롭게 그것들이 허락되지 않는다. 사회가 여성에게만 양육자의 짐을 오롯이 지우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남편과 아내는 양육자라는 공통의 역할을 부여받지만, 어느 한 명에게 그 짐이 더 무거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함에도 나는 아이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여성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정책 결정자들은 꼭 자각했으면 한다. 구태의연한 성역할 이젠 그만 강요하고 출생률 높여보자. 이상 10개월 차 한 기혼 여성의 설을 앞둔 넋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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