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여러 번 구한 거제, 새롭게 도약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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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6년 재경거제시향인회 운영협의회에서 향인회 고문 위촉장을 받고 있는 문재인 현 대통령. 가운데가 김대곤 향인회 부회장. /김대곤

김대곤(59) 재경거제시향인회 부회장은 '기업인 같은 공무원', '공무원 같은 기업인'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대우그룹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거제시 서울사무소장을 7년 동안 역임하면서

거제 지역경제 발전과 향인들 간의 다양한 교류 등에 힘써왔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향인회는 물론 거제시와 서울사무소에 대한 향인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큰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고 했다.

 

청춘을 보낸 대우그룹

Q. 거제 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출생지 등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1960년 거제의 가장 내륙지역인 연초면에서 태어났습니다. 거제 하면 바다지만 어렸을 때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산골짜기 농사만 짓는 곳이었습니다. 거제에서 국민학교(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모두 나왔구요, 이어 육군3사관학교에서 5년간 군 생활을 한 뒤 동아대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민주화운동이 활발하던 격동기라 피 끓는 청춘인 저도 데모를 많이 했죠. 동아대 학도호국단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총학생회를 부활시키는 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Q. 원래 조상 대대로 거제에서 살아온 건지, 또 거제에 아직 가족이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김해 김씨 70세손인데 조상이 조선 정조 때 거제에 유배를 오면서 자리 잡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제에 정착한 선조로만 치면 제가 13세손이죠. 고향에는 모친이 살아 계시고 친척들도 많이 있습니다."

Q. 지금은 서울에 사시는데 대학 졸업 후 자리 잡은 건가요? 직장 등 사회생활은 어디서,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부산에서 잠시 고등학교 교사 일을 하다가 대우그룹에 입사했습니다. 그때 서울에서 잠깐 일했는데 다시 대우정밀에 발령받고 부산으로 갔죠. 그리고 대우가 충남 보령 100만 평 부지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그곳에서 또 10년 정도 일했습니다. 대우정밀 보령공장은 방위산업과 자동차부품 등을 담당했던 곳인데 공장 자체가 처음부터 아주 잘 지어졌고 모든 시스템이 완벽했습니다. 그 후 대우그룹이 무너지면서 지난 2004년 GM에 보령공장이 넘어갔고 저도 GM대우 본사가 있는 부평에서 근무를 좀 했죠. 저는 여기저기 옮겨 다녔지만 가족들은 제가 보령공장 있을 때, 그러니까 1997년에 서울에 정착을 했습니다. '주말 부부' 생활을 오래 한 거죠."

Q. 대우에서 오래 근무하셨군요. 주로 어떤 일을 한 건가요.

"총 20년 정도 대우 및 관련 계열사에 몸담은 건데 주로 구매 파트에서 일했습니다. 매달 한 번씩 유럽에 자동차 부품 구매를 하러 갈 정도로 많은 곳을 다녔죠. 대우가 아직 건재하다면 우리 국가 경제가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겁니다. 김우중 회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영역 개척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 세계를 누볐고 또 정말 한도 끝도 없이 많은 일을 했습니다. 대우를 나온 뒤에는 한국종합물류, 외국계 회사인 PIONEER SEA&AIR 등에서 일했는데 모두 대우 때부터 해오던 구매·물류와 관련된 곳이었습니다. 대우 때부터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해상·항공 등 물류 쪽은 잘 알고 있으니까 스카웃 제안이 온 회사였죠."


권민호 전 거제시장 권유로 공직 생활

Q. 요즘 경제가 어려운데 소회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거제가 대표적이죠. 지금 조선업 경기가 안 좋아 지역경제가 상당히 어려운데 진즉 고부가가치의 다른 영역을 개척해야 했습니다. 호황에 너무 취해 있었어요. 조선업 자체가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에 갖고 갈 산업이 아닙니다. 섬유·봉제가 1만 불 이하 국가가 주로 택할 수 있는 산업이듯 말이죠. 새로운 발상과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죠. 거제는 일찍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첫 승전이었던 옥포해전을 비롯해 6·25 때 피난민 수용, 김영삼·문재인 두 대통령 배출, 그리고 조선을 중심으로 한 경제 발전 등 위기에 놓인 이 나라, 대한민국을 여러 번 구한 곳입니다. 또 다른 도약이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Q. 거제시 서울사무소장으로도 오랫동안 일하신 걸로 압니다. 기초자치단체가 서울사무소를 두는 건 흔치 않은 경우인데요.

"물류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던 2011년이었습니다. 고향 선배이자 대학 선배로서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권민호 거제시장(현 더불어민주당 창원성산지역위원장)으로부터 연락이 왔죠. 서울사무소장을 찾는다고 해서 몇 분 추천을 드렸는데 권 시장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저한테 하라고 했습니다. 전 단호하게 계속 거부했습니다. 연봉도 크게 줄고, 이 나이에 무슨 공무원인가 싶었죠. 일부 언론은 제가 대단한 특혜를 받는 것처럼 보도했는데 말이 안 됐습니다. 다른 기업에서 임원 등 고위직까지 한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어쨌든 결국 권 시장 제안을 받아들였고 권 시장 임기 동안, 즉 작년까지 함께 손발을 맞추며 열심히 일했죠. 주로 한 일은 거제시 예산 확보를 비롯해 기업 투자유치, 관광 홍보, 향인회 관리 등이었습니다. 역대 어느 시장보다 많은 성과를 냈다고 자부합니다. 얼마 전 보니 거제시 예산 문제로 시장부터 시 공무원 10여 명이 서울에 왔던데 이전에는 저 혼자 다 했습니다.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Q. 재경거제시향인회 활동도 오래 하신 걸로 압니다.

"2010년 17대 이기우 회장 때부터였습니다. 향인회 섭외국장, 사무국장, 사무총장 등으로 일했죠. 대우 다닐 때는 여유가 없어 못가다가 퇴직한 뒤 송년회 등에 몇 번 가면서 인연이 됐죠. 이기우 회장님 등 어르신들이 제가 일을 잘하니까 좋게 보시고 이런저런 역할을 맡긴 것 같습니다. 고향 떠나면 잘 모르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그리움과 애착이 생기는 것 같아요. 재경거제시향인회 회원이 총 2만여 명인데 실제로는 더 많을 겁니다. 정기총회, 체육회, 송년회, 골프대회, 지역산업 시찰, 장학사업, 향인 경조사 관리 등 할 일이 많습니다.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향인끼리 비즈니스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가교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Q. 향인회와 서울사무소 일을 동시에 하는 건 별 논란이 없었나요.

"지역에서 일부 문제 제기가 있었죠. 오해입니다. 향인회는 일종의 취미 생활이고 또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닌데요. 오히려 시너지 효과가 훨씬 많습니다. 향인회에 정부 요직에 있는 공무원이나 경제인 등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거제시를 위해 뭔가를 부탁할 때 서울사무소장 대 공무원으로 만나는 것과 고향 선·후배, 형님·동생으로 만나는 게 같겠습니까? 향인들이 거제시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또 향인회 활동에 더욱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매개도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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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곤 재경거제시향인회 부회장. /고동우 기자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거제·경남에 봉사하고파

Q. 인생철학이나 살아가면서 지키고자 하는 원칙 또는 지향하는 목표 같은 게 있습니까.

"어디에 있든 꼭 필요한 인재,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게 있습니다. 그렇게 해왔고 또 되기 위해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절제하고, 낭비하지 않고 소탈하게 사는 것도 중시합니다. 자기 자신을 낮추고 숨기고 그런 자세. 우리나라 사람은 그런 부분에서 좀 문제가 많습니다. 조화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돌아보면 뭔가 불협화음이 있을 때 조정자 역할을 많이 해왔어요."

Q. 향인회 말고 따로 하시는 일은 없나요.

"거제시 서울사무소가 시장이 바뀌면서 지난해 10월 문 닫았고, 지금은 살아오면서 쌓은 다양한 경험, 능력을 바탕으로 고향 거제와 경남을 위해 봉사할 새 길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뭔가 역할이 주어지면 열심히 할 생각이 있습니다. 물론 향인회 활동도 계속 열심히 할 거구요."

Q. 고향인 거제는 자주 오가는 편입니까?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모친이 계시니 명절 때마다 가고 또 친척, 친구도 많으니 종종 만나러 가죠. 가족은 처와 1남 1녀가 있습니다. 큰 애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거기서 직장을 잡았죠. 집은 중구 남산 쪽에 오래 살다가 최근 동대문 쪽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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