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체육 지원은 비용 아닌 복지…건강 사회로 가는 길"

지난해 12월 12일 경남장애인체육회 탁구단 창단식은 파격이었다.

행사장에는 단상이 없었다. 좌석 배치도 주요 내빈이 VIP석에 모여 앉는 것이 아니라 김경수 지사, 김지수 경남도의회 의장, 박종훈 교육감 등이 모두 다른 테이블에 장애인들과 함께 섞여 앉았다.

시상식도 달랐다. 시상이 끝나면 수상자 대표가 곧바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시상자도 이어서 격려하는 말을 나누는 등 격의를 없애고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이 일에 대해 문보근(59) 경남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은 "우리가 주눅 들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당당해야 선수들도 남 앞에 자신감을 갖고 당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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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장애인체육상 시상식 및 탁구팀 창단식이 11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리베라컨벤션에서 열렸다. 김경수 겅남도지사가 유공자에게 상을 주고 있다. /김구연 기자

체육회 체질 개선

문 처장은 지난 2017년 12월 부임했다. 체육인 출신은 아니지만 스스로가 시각 장애인이어서 장애인 정책에 대해서는 관심도 많고, 장애인의 고충도 잘 안다.

그는 올해 경남장애인체육회 슬로건을 '혁신과 창의, 완전히 새로운 경남장애인체육회'로 정했다고 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체육회를 이끌다 보니 관료화가 심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직원들이 기안해오는 것 보면 지난해 행사 기안에서 일시와 장소만 바꿔서 그대로 들고 오는 겁니다. 고민을 전혀 안 한다는 얘기죠. 직원들부터 고민하지 않는다면 체육회에 변화가 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 직원들에게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체육회가 체질을 바꾸고 가맹종목단체에도 변화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

"종목단체 관계자들과 얘기를 하면 답답할 때가 많아요. 건의를 받아보면 체육회가 당장 어떻게 해줄 수 없는 것들이란 말입니다. 경기장 화장실이 너무 멀다거나 계단이 있어서 힘들다는 식인데, 그럼 이렇게 말했어요. '그런 건 대통령이 와도 당장 어떻게 안 되는 일이다. 그런 것 말고 정말 필요한 것이 뭔지, 선수들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걸 전해달라'는 거죠."

이러니 실질적인 변화가 왔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수영 선수가 수영복 사 달라고 하면 안 사줬다고 한다. 문 처장은 "수영복은 그냥 옷이 아니라 수영선수에게는 장비다. 장비구입 예산이 있는데도 안 사준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체전에 나가는 선수단에 유니폼을 한 벌씩만 해줬는데, 5일 동안 한 벌로 계속 경기하는 것은 어려우니 2벌로 늘렸다. 함께 출전하는 지도자 수당도 하루 5만 원 주던 것을 현실화하고자 조금씩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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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경남선수단 결단식. /경남장애인체육회

장애인 생활체육 기반 강화

경남장애인체육회 올해 예산은 54억여 원이다. 지난해와 올해 각각 10억 원씩 증액된 것인데 여기 일화도 소개했다.

"예산 작업할 때 직원들에게 이렇게 요구했습니다. 작년 하던 사업비 1000만 원을 2000만 원으로 올리는 식으로는 큰 예산 증액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하고, 무슨 사업을 하면 장애인 생활체육이 발전할 수 있는지 고민해서 아이템을 만들어야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경남장애인체육회장인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엘리트체육보다는 생활체육에 관심이 많다. 그러니 체육회도 생활체육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지사 방침이 몇 사람 엘리트 선수 중심으로 운영하지 마라는 겁니다. 성적 좀 내려고 우수 선수 사 오고 이러는데 예산 쓰기보다는 생활체육 기반을 강화해주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겁니다."

얼마나 많은 장애인이 체육활동을 접할 수 있게 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후천적 장애인이 90%를 넘는 상황에서 이들이 집에만 있다면 그 비용을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데, 이들이 밖으로 나와 체육활동을 하면서 건강도 다지고 재활도 한다면 이건 체육활동이기도 하지만 복지라는 생각이다.

이런 기반 강화를 위해 시·군 장애인체육회 설립에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미 창원시와 거제시에 설립됐으며 양산시·김해시·함안군 등에서도 추진 중이다. 체육회가 설립되면 생활체육지도자를 배치해 생활권에서 체육활동을 지원하기가 수월해진다.

이런 활동으로 생활체육으로 시작해 그중 실력 좋은 사람이 나오면 전문 체육인으로 발전하면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면 경남이 전국 장애인체전에서 중위권 성적을 유지할 수 있다는 복안도 있다.

문 처장은 그 사례로 진주에서 활동하는 '멋진 여성배구단' 예를 들었다. 50세 이상 13명으로 구성된 하지 장애인 좌식배구단이다. 65~66세까지 함께 운동하고 있는데 생활체육으로 시작해 이제는 전국대회에 나가서도 3위권 안에는 드는 실력파가 됐다. 문 처장은 최근 진주에 있는 LH 본사를 방문해 이들이 마음껏 운동할 수 있게 체육관을 쓸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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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승 결의를 다지는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경남선수단. /경남장애인체육회

엘리트 선수 지원도

문 처장은 생활체육 못지않게 엘리트 체육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근래 가장 크게 공을 들이는 분야는 장애인 선수를 기업에 취업시키는 것이다. 지난해 거제거붕백병원에 사격선수를 취업시켰으며 경남에너지에도 1명 취업이 곧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일정 규모 이상 되는 기업은 장애인을 의무고용해야 하는데 실제 채용하려면 부대비용이 많이 든다는 등의 이유로 고용부담금만 내고 채용 안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기업이 장애인 선수를 채용하면 부담금을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채용 보조금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그런 선수를 모아 훈련시키면서 근태관리까지 해주면 되니 윈윈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봅니다."

진주에 조정 훈련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갖추는 일도 올해는 꼭 해내고 싶다고 했다. 진양호에서 진주시청 조정부가 훈련하는데, 상수원보호구역이다 보니 시설물을 설치하기 어렵다. 규제를 어기지 않으면서도 장애인들이 훈련할 수 있게 묘안을 짜내려고 한다.

휠체어 사이클 선수도 발굴했다.

"사람이 저렇게 예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얼굴은 잘생기지 않고, 밖에서 운동하니 시커멓게 그을렸는데 땀 흘리며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니까요. 다음에 기회 있으면 한번 보세요."

사이클을 시작한 지 2년 정도밖에 안 됐는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는 2000만 원을 들여 전용 휠체어를 사줄 생각이다.

또 도내에 유일한 장애인 전용체육시설인 진주 론볼 경기장 리모델링도 예산을 확보해 올해 중 준공할 계획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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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보근 경남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 /정성인 기자

기자-프리랜서-정치인에서 이제는 체육행정가로

문 처장은 하동군 출신이다. 당시 글 쓰는 재주는 있어 여성 월간지에서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생활도 나이가 좀 드니 못 하겠더라고요. 여성들 꽁무니만 따라다니는 것 같아서. 그때 마산에서 동남일보를 창간한다고, 지인이 함께하자고 해서 마산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끝이 좋지는 않았죠."

동남일보 폐간 후 다시 서울로 가서는 '먹고 사는 일'에 집중했다. 출판계에 아는 사람들이 좀 있다 보니 프리랜서 대필작가로 써낸 책도 17권쯤 된다고 말했다. 그러다 <월간 조선>에 프리랜서 기고자로 활동한 게 계기가 돼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만났다.

"인터뷰 기사가 마음에 들었나 봐요. 개인적으로 김 지사를 그때부터 도왔습니다."

김 전 지사가 정계를 떠나자 그도 곁을 떠났는데 김맹곤 전 김해시장의 부름을 받고 김해로 옮겼다. 이후 부산-김해경전철운영주식회사 상임감사를 지내기도 했다.

기자로, 대필작가로, 김 전 지사의 연설문 작성 일을 하며 '글로 먹고산' 세월이 만만치 않지만 지금은 "가장 하기 싫은 것이 글 쓰는 것"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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