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드나잇 인 파리>(감독 우디 앨런)
밤거리 배회하던 주인공
과거로 홀연히 거슬러가
헤밍웨이·피카소·달리…
유명 소설가·화가 조우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면

2012년 개봉한 <미드나잇 인 파리>는 참 아름다운 영화다. 도시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된 파리 풍경뿐만 아니라 주인공 길(배우 오웬 윌슨)이 만나는 사람들과 길이 그들로부터 받은 영감과 감동, 그리고 한 사람의 새로운 출발까지.

영화를 보는 내내 파리로 당장 날아가고 싶은, 아니 한 번만이라도 '그 시절' 파리를 보고 싶다는 열망이 차오른다.

간단히 영화 줄거리를 말하면 길은 약혼자 이네즈(배우 레이첼 맥아담스)와 파리 여행을 한다. 하지만 둘의 여행법은 아주 다르다. 단순한 예로 길은 비 오는 파리를 걷고 싶지만 이네즈는 쇼핑을 한 후 피곤해한다. 그러다 길은 홀로 밤거리를 배회하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기이한 일을 겪는다. 홀연히 나타난 차에 올라탄 그는 1920년대 파리에 도착하고, 매일 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바로 길이 평소 동경하던 예술가들.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는 길은 어리둥절하지만 매일 밤 파티를 즐긴다.

또 자신이 쓴 소설을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영광이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아드리아나(배우 마리옹 코티아르)를 사랑할 것 같다. 2010년대의 길과 1920년대의 아드리아나는 어떻게 될까?

▲ 주인공 길은 약혼자 이네즈와 파리로 여행을 떠나지만 그녀와 취향이 다름을 깨닫는다. 길은 홀로 어둠이 내려 앉은 파리의 거리를 떠돌다가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홀연히 나타난 클래식 푸조 자동차에 올라탄다. 그가 내린 곳은 1920년대 파리 뒷골목. 그곳에서 스콧 피츠제럴드·헤밍웨이·살바도르 달리를 만난다. /<미드나잇 인 파리> 스틸컷

◇"그대를 품고 오늘을 살아요"

2016년 국내에서 재개봉한 <미드나잇 인 파리>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다시 이 영화를 꺼낸 이유도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길이 만나는 예술가는 우리 모두의 예술가다.

늦은 밤 클래식 푸조 자동차에 올라탄 길은 한 파티장에서 부부를 만난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로 잘 알려진 프랜시스 스콧 키 피츠제럴드와 젤다 피츠제럴드다. 젤다는 사랑스럽지만 술을 좋아하고 광기가 있었다는 소문답게 어디로 튈지 모른다. 스콧의 친구들은 그를 염려한다. 젤다가 스콧의 재능을 질투해 남편의 눈을 멀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콧은 그녀를 사랑한다.

길은 그들을 따라 장 콕토(프랑스 출신 시인)를 위한 파티장으로 들어선다. 그곳에서 익숙한 노래가 들린다. 콜 포터(미국 출신 작곡가)가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Let's Do It.(레츠 두 잇)", "Let's Fall in Love(레츠 폴 인 러브)."

사랑을 하자는 콜 포터의 노래는 영화 OST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극의 분위기를 살린다. 콜 포터는 '20세기 대중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며 뮤지컬과 재즈에서 크게 활약했다.

길은 갑자기 얼이 빠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인사를 건넨 것. 그는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소설가다.

길은 헤밍웨이에게 자신이 소설을 쓴다 말하지만 자신이 없다. 그러자 헤밍웨이는 거침없이 말한다.

"영 아닌 소재는 없소. 내용만 진실 된다면. 또 문장이 간결하고 꾸밈없다면 그리고 압력하에서도 용기와 품위를 잃지 않는다면…."

영화에서 헤밍웨이는 죽음에 대해 자주 말한다. 스스로 고백했듯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었던 그의 모습은 영화에 나타난다.

길은 용기를 낸다. 헤밍웨이에게 자신의 소설을 읽어달라고 하자,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보여주겠단다. 그녀는 글을 쓰며 많은 작품을 읽고 비평을 했다. 특히 헤밍웨이와 교류하며 미국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까지가, 길이 하룻밤에 경험한 일화다. 놀랍지 않은가.

길은 다음 날 자정 파리 골목에서 차를 기다린다. 기가 막히게 헤밍웨이가 손짓을 하고 스타인의 집에서 파블로 피카소와 그의 뮤즈 아드리아나를 만난다.

그녀는 영화에서 만나는 예술가 중 유일한 허구의 인물이다.

스타인은 피카소가 아드리아나를 그린 작품을 보고 혹평을 퍼붓는다. 그녀의 집에는 언제나 예술을 향한 비평과 논평이 넘쳐난다.

스타인이 앙리 마티스의 그림이 좋아졌다며 500프랑에 사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 참 부럽다.

길은 행복해하며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눈이 마주치는 사람과 인사를 한다. 그들은 살바도르 달리(화가), 루이스 뷰뉴엘(영화감독), 만 레이(사진작가)다. 초현실주의자들답게 길의 시간 여행을 반긴다.

그리고 아드리아나와 한 번 더 시간을 거스른다. 그녀가 늘 동경했던 '벨에포크' 시대, 1890년대다. 여기선 피카소가 존경하던 툴루즈 로트렉이 있고 폴 고갱(화가)과 에드가 드가(화가)가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영화는 센강변, 베르사유 궁전, 노트르담 대성당, 루브르박물관, 로댕미술관을 비추며 장면마다 유명 예술가를 등장시킨다. 바로 내 마음을 훔쳐갔던 강렬한 문장을 쓰고 세계인의 찬사를 받는 그림을 그렸던 이들.

이들이 살아있다면 하고 한 번쯤 상상했던 팬이라면 <미드나잇 인 파리>는 영화가 건네는 "과거에 살았다면 행복했을까라는 상상을 버리고 오늘을 살아라"는 메시지와 별개로 가슴 속에 남는다.

앙리 마티스, 폴 고갱….

만나고 싶다.

영화는 넷플릭스 등 영화 공유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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