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추운 겨울엔 '갈비'와 '동다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그렇게나 소중한 갈비라면 돼지갈비가 아니라 소갈비겠네요?"

"코다리는 알겠는데 '동다리'는 뭐죠?"

요즘 아이들 앞에서 '갈비'와 '동다리' 얘기하면 십중팔구 이렇게 물어볼 것 같다. 하긴 불 때서 밥하던 꽤 먼 옛날 말이니 요즘 아이들이 알 리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갈비는 소나 돼지의 갈비가 아니라 말라서 땅에 떨어져 쌓인 소나무 잎이다. 표준말로는 솔갈비. 경상도와 강원도 방언으로는 갈비다. 그럼 '동다리'는? 소나무 가지 중에 죽어서 말라비틀어진 것들을 가리키는 '우리 동네' 사투리다. 이런 사투리를 쓰는 우리 동네는 경남 사천 곤양이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표준말로 솔가지다. 솔갈비와 솔가지를 모아 놓으면 솔가리가 된다.

솔갈비와 솔가지는 아궁이에 처음 불을 지필 때 가장 요긴하게 사용된다. 그 시절 추운 겨울엔 손과 발이 꽁꽁 얼어붙은 상태로 집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이 아궁이에 불 피우는 일이었다. 잘 마른 솔잎과 가느다란 소나무 가지를 불쏘시개로 사용하는 것이 최고로 좋았다. 태우면 소나무 특유의 냄새와 따닥따닥 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집집마다 필요했기에 너도나도 땔감 장만하는 바람에 '갈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나 대부분의 산들이 나무가 없거나 드문드문 서 있는 민둥산이었다. 나무를 하기 위해 수 십 리를 걸어 다녀야 했던 시절.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이야기다.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겨야 했던 민초들은 무척이나 배가 고픈 나머지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는데 칡뿌리나 소나무 껍질을 주로 벗겨 먹었다. 그런데 소나무 껍질은 식이섬유가 많아 굉장히 질긴 것이 문제였다. 사람 몸은 장이 질긴 식이섬유를 분해하기 위해 어떻게든 많이 움직여야 하는데 이때 대장을 통해 과다한 수분이 체내로 흡수되면서 대변이 굳어져 심한 변비 증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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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소안도 해송 숲. /윤병렬

이렇듯 소나무는 우리네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소중한 나무였다. 아이는 소나무 기둥과 소나무 서까래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생솔가지 꽂은 금줄 처진 집에서 첫 삶을 시작한다. 살아가는 동안에 쓰는 가구나 각종 도구들도 소나무로 만들어졌다. 죽어서는 소나무 관에 누워 소나무가 지켜주는 도래솔의 도움을 받아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다. 왕릉을 비롯한 무덤 주변에 소나무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나무는 애국가부터 유행가 가사까지, 온갖 옛이야기와 전설, 민담, 민화, 선비들이 그린 산수화와 도자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애국가 2절 가사다. 그렇다면 남산 위에 철갑을 두른 듯 서 있는 저 소나무는 언제쯤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까? 문헌상에 나오는 기록으로는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가 최초다. "신라 애장왕 2년(802) 10월에 날씨가 매우 추워서 소나무와 대나무가 얼어 죽었다." 또 가야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돌아온 뒤 세속을 떠나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고 책에 파묻혔다는 내용도 <삼국유사>에 나온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도 소나무 이야기가 여러 차례 나온다.

지구상에는 100~110여 종의 소나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나무류는 약 1억 7천만 년 전 중생대 시기에 지구상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는 지구 전체에 분포하는데 주로 북반구 둘레에 띠처럼 자라고 있다. 대표적인 침엽수 나무로는 주목, 소나무, 곰솔, 잣나무, 전나무, 분비나무, 구상나무, 측백나무, 삼나무 등이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는 중국에 22종, 일본에 6종, 한반도에 6종이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 사는 여섯 종에는 소나무, 곰솔, 잣나무, 섬잣나무, 눈잣나무, 만주곰솔이 있다. 소나무는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일반 산림 토양은 물론이고, 물기가 있는 하천이나 범람하는 습지, 바닷물이 영향을 미치는 해안가, 고산 사막과 다름없는 건조지에서도 자란다. 심지어 산불이 난 후 불탄 자리에서도 가장 먼저 싹을 틔워 살아가기도 한다. 뜨거운 불기운이 오히려 단단한 솔방울을 열어젖혀 씨앗을 퍼뜨리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는 소나무류를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잎의 개수를 세는 것이다. 잎이 두 개면 소나무와 곰솔이고 잎이 세 개면 리기다소나무. 다섯 개면 잣나무, 눈잣나무, 섬잣나무다. 솔잎의 수명은 대부분 2~3년 정도 된다. '갈비'가 되는 것이다. 소나무의 우리말 이름인 '솔'은 으뜸을 뜻하는 '수리'가 변한 것으로 으뜸이 되는 나무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우리 땅의 산과 들 어디에서나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나무다. 반면에 곰솔은 주로 해안가에서 볼 수 있다. 주로 바닷가에서 자란다 해서 해송으로도 불린다. 곰솔이란 이름에는 수피가 검다는 의미와 잎이 억세고 곰 같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줄기 껍질이 검은 갈색에 가깝다 해서 검은 솔로 부르는데 한자로는 흑송이라 불리기도 한다. 소나무는 줄기 껍질이 붉은빛이 나서 적송, 육지에서 자란다 해서 육송이라고도 불린다. 소나무와 곰솔의 다른 점 중 하나는 소나무는 겨울눈이 붉은 데 비해 곰솔 겨울눈은 흰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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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천년송. /윤병렬

리기다소나무는 북아메리카와 대서양 연안이 고향이다. 우리나라에는 1906년에 미국으로부터 들여와 전국에 심었다. 주된 용도는 사방용과 연료용, 조림용이었다. 우리 소나무와는 달리 줄기 곳곳에 싹눈이 발달한 모습 때문에 '수염 달린 소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최근에는 목재로서의 가치가 떨어져 별로 대접받지 못하는 나무가 되고 말았다.

초등학교가 아니라 '초등학교'를 다닌 옛날 세대들은 소나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억이 송충이 잡기다. 송충이는 솔나방 애벌레인데 온몸에 긴 털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송충이는 털끝에 독이 있어 쏘이면 따갑다. 피부가 쓰라리면서 벌겋게 부어오른다. 당연히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데 자기 분수도 모른 채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 솔잎을 먹어야 하는 송충이 입장에서는 살기 위한 방편이 되는 먹이지만 사람들에게는 귀하디귀한 소나무 잎을 축내는 해충일 수밖에 없다. 송충이 피해의 역사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숙종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송충이 피해를 줄이기 위해 불교의 힘을 빌렸다는 기록까지 나와 있다. 그 무렵부터 수많은 사람이 동원되어 송충이를 잡기 시작했다. 송충이 박멸 작업은 조선시대 말 고종 때까지 이어진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린 학생과 마을 주민 그리고 군인까지 동원되어 해마다 대대적으로 송충이를 잡았다. 지금은 산림청의 방제 작업과 공해 때문에 예전보다 확연하게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송충이보다 더 무서운 소나무재선충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소나무에 피해를 입히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송진 채취가 있다. 송진은 소나무가 손상을 입었을 때 분비되는 액체인데 가공을 하면 송탄유가 된다. 송탄유는 송진을 가공해서 얻는 기름으로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 전역에서 무차별적으로 송탄유 수탈을 자행했다. 소나무 하단에 'V' 자로 홈을 낸 뒤 송진을 채취하기도 했고, 송진 성분이 많은 관솔에 불을 지펴 송진을 뽑아내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도 무척이나 가난했던 사람들에 의해 1970년대 무렵까지 송탄유 만들기가 이어졌다고 한다. 등산을 하다 만나는 나이든 소나무에 흉측한 송진 채취 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는 이유다. 이렇게 채취된 송탄유는 생필품 원료뿐만 아니라 석유 대용으로 군용기에도 사용되었던 것이다. 북한에서는 1990년대 중·후반까지도 송탄유를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송충이, 송진, 송탄유 모두 이젠 아련한 추억이면서 역사의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어찌 보면 소나무가 겪어야 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겨울이 다 되어야 솔이 푸른 줄 안다'는 말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는 겨울에 찾아가 보는 것이 제일 좋다. 소나무 아래 앉아 유유자적 솔향기 맡으며 막걸리 한잔 기울이면 금상첨화다. 노래도 한 곡 곁들이면 더욱 좋겠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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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양군 휴천면 목현리 구송. /윤병렬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제법 이름난 소나무와 소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다락논 가장자리에 있는 합천 화양리 소나무는 나뭇가지의 꿈틀거림이 마치 하늘로 오르는 용을 닮았다 해서 '구룡목'으로 불리는 멋진 소나무다. 무려 400여 년이란 긴 시간 동안 마을을 지켜온 수호목이다. 함양군 휴천면 목현리 개울가에는 300여 년 전 줄기가 아홉 갈래로 나뉘어 자라온 '구송'이 있다. 아래로부터 나뭇가지가 갈라져 크는 반송이다. 거창군 위천면 당산리에 있는 당송은 곧게 솟아오른 기상이 으뜸인 소나무다. 수령은 600년 정도로 짐작되는데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웅-웅-웅' 소리 내어 큰일을 미리 알려주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의령군 정곡면 성황리 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의령 성황리 소나무는 일제강점기 때 이 소나무 가지가 앞에 붙어있는 다른 소나무 가지와 맞닿으면 광복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실제로 나뭇가지가 맞닿을 즈음 해방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나무다. 나무 형태가 매우 아름다운 나무였는데 최근에는 소나무재선충 피해 방지를 위해 긴급 구제에 들어간 모습이 안타까운 나무이기도 하다. 네 나무 모두 경상남도에 있으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사천시 사천읍 정동면 대곡리에 있는 대곡리 소나무 숲은 170년 전쯤 비보숲으로 조성한 마을 숲이다. 마을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북한군들이 숲 너머에 있는 마을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 정도로 울창했다고 한다. '제3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2002)'에서 대상을 받은 마을 숲이다.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소나무 숲과 거창군 웅양면 동호마을 숲도 소나무의 은은하고 아름다운 정취를 감상할 수 있는 곳들 중 하나다. 거창에 가면 수승대 주변 소나무 숲을 거닐어 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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