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 알렉산드라 해리스 지음
셰익스피어·버지니아 울프…
예술가 삶·작품 영향 미친
영국 날씨 관련 문헌 탐구

"모든 것이 날씨 탓일 것이다. 나쁜 날씨, 내 인생은 나쁜 날씨 속에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었다."

- 전경린 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문학동네, 2014년 1월)

꼭 이런 문학 작품이 아니라도 날씨에 대한 것이라면 누구나 할 말이 있을 테다. 특정한 날씨가 주는 어떤 기억이나 감정일 수도 있고, 반대로 변화무쌍한 날씨에 대한 무심한 마음일 수도 있다.

◇재기 발랄한 젊은 학자가 본 문헌 속 날씨 = 진주에 있는 출판사 펄북스에서 최근 낸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알렉산드라 해리스 지음, 강도은 옮김, 2018년 12월)는 날씨에 대한 이런 느낌들을 영국을 배경으로 방대하고 지독하게 탐구한 책이다. 7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다. 도대체 어떤 이가 영국 날씨만으로 이 정도 분량의 책을 썼을까. 원저는 2016년 7월 영국에서 발간된 <웨더랜드 Weatherland>. 저자 알렉산드라 해리스(38)는 재기 발랄하게 보이는 젊은 학자다. 그는 현재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영문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엄청난 독서량에 걸맞은 지식, 그 지식을 개성 있게 구성해내는 능력을 지닌 듯하다.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이야말로 그가 이 책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웨더랜드>를 낸 출판사 '테임스 앤드허드슨'이 유트브에 올린 인터뷰에서 알렉산드라 해리스는 자신의 책을 두고 "날씨와 관련한 인간 상상력의 역사"라고 평했다. 버지니아 울프로부터 시작된 그의 날씨 문헌 탐구는 곧 수천 년 영국 역사로 확장됐다.

◇로마의 변방 영국의 음습함 = 지난 수 세기 동안 영국 사람들은 같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날씨에 대한 생각은 시대마다 달랐다.

4, 5세기 로마가 영국을 지배하던 시기, 영국은 놀랍게도 추방지 같은 춥고 어두운 변방이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오크들이 사는 곳을 상상하면 되겠다. 로마 수도가 있던 지중해 날씨와 비교하면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만도 하겠다. 로마 지배 이후 앵글로색슨 시대인 8세기에 고대영어로 쓰인 영국 서사시 <베오울프>에서 영웅 베오울프가 처치해야 할 괴물 그렌델이 사는 축축하고 습기 찬 곳 역시 영국이다. 이렇게 추위와 습기야말로 고대 영국을 대표하는 이미지였다.

"추방당한 앵글로색슨 시인들은 그리스·로마의 망명 문학을 마음속에 떠올렸고 (중략) 국경선 저 멀리에 있는 추운 변방의 땅에 대한 로마인들의 생각을 기본적으로 공유했다. 그곳은 따스한 문명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76쪽)

영국에서 날씨를 과학적으로 측정하기 시작한 건 17세기 이후다. 물론 16세기부터는 계절을 분명히 구별해서 부르기 시작하긴 했다. 그래도 이전까지 영국 문헌에서 보이는 날씨에 대한 이해와 묘사는 신화적인 요소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니 날씨에 대한 개인적인 감성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날씨는 삶의 배경에 불과했다.

"이 시대(17세기)에는 어떤 화가도 밖에다 이젤을 세워놓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당시의 초상화가들 (중략) 하늘을 그릴 때 단지 위엄을 갖춘 배경으로서만 열성을 다해 그렸다." (223쪽)

이런 시대를 살았던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위대함이 여기서 드러난다. 그는 연극을 통해 날씨와 감정, 분위기를 연결하고 이를 대사와 무대 배경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날씨를 제대로 느끼게 된 사람들 = 18세기 이후로 영국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날씨를 기록했다. 날씨에 대한 감상도 신화를 벗어나 실질적으로 변한다.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가 <도심의 소나기에 대한 묘사>에 담은 영국의 진흙탕 도로 상황을 보자. 당시 산업화로 영국은 한창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익사한 강아지, 악취를 풍기는 청어, 모든 것들이 진흙 속에 잠겼네. 죽은 고양이. 순무 잎들이 물에 잠긴 채 뒤죽박죽 떠다니네." (316쪽)

같은 시기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다니엘 디포(1660~1731)는 이런 진흙탕 도로 개선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20세기 영국 사람들은 마치 '밝고 환한 신세계'를 발견한 것처럼 일광욕에 몰두했다. 이때 날씨가 로마 지배 당시와 엄청나게 다르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이 된 버지니아 울프(1882~1941). 울프는 오래된 문헌 속에서 날씨를 상상하던 작가였다.

"울프는 책의 배경이 되는 날씨에 민감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작가였다. 가령 1450년대에 존 패스톤이 편지를 썼던 방은 틀림없이 외풍이 심했을 거라고 울프는 분명히 느꼈다. (중략) 울프는 또한 우리가 읽고 있는 책에 나온 날씨가 그 책을 이해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잘 알았다." (617쪽)

▲ 셰익스피어 작품 속 리어왕은 권력을 상징하는 옷을 벗고 폭풍에 몸을 맡긴다. 폭풍을 '자신을 향한 채찍질'로 삼는다. 사진은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 책에 등장한 리어 왕 모습.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 196쪽 발췌

◇자신만의 날씨 이야기를 해보자 = 현대인들은 주로 날씨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실내에서 일상을 보낸다. 이전까지는 인간이 주로 날씨에 영향을 받기만 했지만, 이제는 미세먼지가 그렇듯 인간이 날씨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날씨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준다. 영국의 시인, 아동문학가인 테드 휴스(1930~1998)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 모두가 겪는 시적인 경험들은 (중략) 시시각각 날씨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런 이유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다가 어떤 순간에 시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671쪽)

이제 우리 자신의 날씨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다. 자, 당신이 사랑하는 날씨는 어떤 것인가! 펄북스 펴냄, 4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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