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목적, 직업 아닌 자아실현
기성세대 잣대로 '성공'규정 말길

최근 한 종편사의 이라는 드라마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주고 있다. 드라마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교육열을 고발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의도와는 달리 입시 코디를 찾거나, 컨설턴트를 찾겠다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유은혜 교육부장관은 고졸 취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며 '학벌중심이 아닌, 능력중심의 사회'를 천명하고 나섰다.

여기서 필자는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교육의 도구화다. 드라마에서도, 대통령도, 교육부 장관도 모두가 교육을 통해 좋은 직업을 가지는 수단으로 인식한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인식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는 보편적인 인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육의 원래 목적은 이런 것이 아니다. 교육은 개인적으로는 '자아실현', 사회적으로는 인간이 사회 속에서 자유와 평등,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삶이 자아실현을 위한 자아의 잠재적 가능성의 실현과정'이라고 말했다. 자아실현은 인간 교육의 궁극적인 지향점이자 목표이다. 이런 원래의 교육 목적은 현대사회에서는 대학의 전공서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되어 버렸다. 드라마 에는 전문직 남성과 그것을 갈망하는 여학생, 그리고 자신의 삶을 모두 걸어서라도 아이를 의대에 보내길 원하는 엄마가 등장한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궁금해진다. '의사' '변호사' '교수'로 등장하는 기성세대의 삶과 지금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같은 잣대로 성공을 말할 수 있을까.

현대사회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적 격동기에 놓여 있다. 그리고 앞선 세 번의 산업혁명은 기존의 직업을 없애기도 했고, 새로운 직업을 만들기도 했다. 인공지능은 인간 의사보다 훨씬 더 뛰어난 진단을 한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인간 변호사보다 훨씬 더 소장을 잘 작성한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그 어떤 교수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만큼 발전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결국 마지막 결정은 인간이 하는 프로세스를 선택할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과연 기존 방식의 학교 교육이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을까 하는 원론적인 의문이 들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교육은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과 행복의 이해를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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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초 필자의 아들은 한 사설기관의 겨울캠프를 통해 뉴욕으로 갔다. 필자의 아들은 보통의 또래 아이들처럼 스마트폰에 빠져 있다. 그래서 겨울방학 동안이라도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에서 또래 아이들과 놀이와 학습하는 시간을 통해 즐겁게 보내길 바랐다. 그곳에서 보내온 아들 사진을 보면, 녀석은 스마트폰이 없이도 새로 사귄 친구들과 즐겁게 웃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집단에서 그들만의 룰을 만들었을 것이고, 새로운 친구와 친해지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과정도 배웠을 것이다. 승마 체험을 하고, 수영을 하고, 눈싸움을 하고, 골프를 배우고 뉴욕의 거리에서 친구들과 함께 댄스공연을 하는 동안 녀석은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 갈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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