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이 최선이라고 믿는 갯벌마을 아재
정치·언론이 만든 프레임 깰 수 있을까

겨울 바다에 비친 빨간 노을이 눈부신 어느 날. 곡선의 미학 한껏 뽐내는 갯고랑 위에도 저녁노을이 부서져 내린다. 세상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간다. 멀리서 들려오는 '뿅-뿅-뿅' 청다리도요 새 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어느 유행가 가사 내용처럼 '하늘땅 바람소리 새소리 공짜'란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감상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 길옆에 어떤 동네 아재가 불쑥 나타났다. 아재는 타고 가던 자전거를 멈추고 대뜸 시비조로 물어온다. "오데서 오셨능교? 요게는 뭐하러 왔능교?" "아~ 네. 노을이 아름다운 곳 찾아 사진 찍으러 왔어요! 새도 보고, 경치도 구경하고요." 옆에 있던 친구가 한마디 더 거든다. "저는 멀리 서울에서 왔는데 이곳 경치가 정말 좋아요. 하늘과 산, 바다, 갯벌 위로 이렇게나 아름다운 노을 물드는 곳 볼 수 있는 데가 많지 않거든요." 살짝 돌아보니 친구 말 듣던 아재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진다. 상대방 마음 읽었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무신소리 합니꺼. 여기는 매립해서 공장 지을 땅이라예. 저 건너까지 다리도 놓고예." 공장이 많이 들어와야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될 거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어서 빨리 큰 다리가 건설되어야 땅값도 올라가고 경제가 활성화될 거라며 열변을 토한다. 읍내 경기가 다 죽었다고 울상까지 지어 보인다. "초저녁에도 불 꺼진 가게가 많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이 자꾸만 늘어간다"며 푸념 섞인 넋두리에 하소연까지 이어간다.

그래서 아재는 아직도 갯벌 매립이 공단 부지 늘려 잘사는 최선의 방법이라 여긴다. 다리를 여러 개 건설해야 산업단지 늘릴 수 있단 생각, 산을 까뭉개 그냥 메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옳다고 굳게 믿는다. 수백만 평이나 되는 갯벌을 매립하겠다는 경험 많고 교활하기까지 한 정치꾼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는 모양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또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재는 잘 모른다. 선거철만 다가오면 내세우는 선거 전략의 일환이란 사실. 빌 공자 공약이 되더라도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 생각하는 정치인 속내가 감춰져 있단 사실을.

그러고 보니 힘센 일부 언론들은 벌써 프레임 전쟁을 준비 중인 모양이다. 또다시 '기승전 경제' 프레임으로 승부를 걸 태세다. '기승전 최저임금', '기승전 세금폭탄' 때문에 가게가 망하고 나라 경제가 거덜 날 지경이라며 선전·선동을 일삼고 있다. 앞뒤 상황 자르기, 논리가 맞지 않더라도 반복해서 말하기,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보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를 반복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아재가 좋은 경치, 예쁜 노을이 밥 먹여 주냐며 목소리 높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분명 아재는 공중파와 종편, 그리고 난무하듯 늘어나는 인터넷 뉴스, '가짜뉴스'들을 통해 여러 경제 상황을 짐작하고 자기주장을 펼친 듯하다. 이젠 정말 지겨울 때도 된 경제 논리가 아직도 먹혀들어가는 이유다. 갯벌 매립과 다리 건설이 최선의 행복을 가져다줄 거란 믿음. 신념을 넘어 종교에 가까워져 있는 그 믿음의 진원지는 다른 곳에 있었다. 결코, 아재 탓이 아니었다. 아재는 언제쯤 가려진 진실을 알 수 있을까. 권력과 탐욕에 눈먼 언론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요원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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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명절 프레임 전쟁이 시작되었다. 지겹고 지겹지만, 총알과 폭탄은 경제 문제와 이념 문제다. 힘 있고 영향력 센 거대 언론이 만든 이런 프레임 전쟁은 이번 설 연휴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오순도순 모여앉아 옛날 이야기꽃 피우며 행복한 설 연휴 보내긴 힘들 듯하다. 다만 누가 준비하고 일으킨 전쟁인지도 모른 채 가족끼리, 아군끼리 얼굴 붉히며 싸우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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