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이 주인'이란 데서 출발한 공교육
스카이캐슬식 아닌 새 교육 고민해야

올해 중학교에 진학하는 첫째 딸이 교복을 무상으로 지원받게 됐다. 문자 안내를 받은 아내와 딸은 동네 마트에 입점한 아무개 브랜드의 사업장에 가서 치수를 측정한 뒤 바로 교복을 받아왔다. 세상은 이렇게 바뀌는구나 싶었다. 서울시장이었던 오세훈이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주민투표를 강행한 것이 2011년 8월이었다. 경남도지사였던 홍준표가 무상급식 지원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것이 2015년 4월이었다. 어느새 급식에 이어 교복까지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이 '상식'이 된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그 사이 촛불이 있었고, 대통령 탄핵이 있었으며, 곧이어 정권 교체와 지방 권력 교체가 잇따랐다. 선거, 즉 선거권을 가진 공민(公民)의 힘으로 우리 사회는 이렇게 바뀌었다.

다가오는 3월 1일은 3·1운동 100주년이다. 헌법 전문에도 명시돼 있듯이 이날은 '대한민국'이 탄생한 날이다. 이날 발표된 독립선언문은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포했지만, 한 달 뒤인 4월 11일에 마련된 임시 헌장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제1조에 정치체제를 '민주공화제로 한다'고 선명하게 밝힌다. 당시 임시정부는 불과 9년 전만 해도 존재했던 '대한제국'을 되살리는 대신 독립국의 주권자를 황제에서 인민으로 교체한 공화국 '대한민국'을 제시했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발상이 전환되는 과정에 3·1운동의 경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3·1운동 중에서도 특히 민국의 성격을 잘 보여준 곳은 부산이었다. 부산에서 만세운동은 서울보다 열흘 늦은 3월 11일에 일어났다. 눈여겨볼 대목은 그 첫 함성을 여학생들이 울렸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일신여학교 학생들이었다. 무기력한 왕과 교활한 사대부 출신 대신들이 무너뜨린 나라를 되살리는 데 여학생까지 앞장섰으니 새로 만들 나라는 당연히 그들이 주권자여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한반도에서 공화국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왕조가 바뀌어도 적지 않은 변화인데 주권자 자체가 왕에서 인민으로 바뀌었으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임금이나 사대부가 아닌 인민이 나라의 주인 되는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무엇이 달라지고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 걸까? 이른바 공교육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근대적 공교육의 역사가 1789년 프랑스 혁명의회에서 입안한 교육제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최근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화제다. 드라마의 뜨거운 반향은 역설적이게도 이 땅의 부모 대부분이 가진 교육의 욕망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들과 기본적으로 같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해 남보다 좋은 성적을 받고 명문대학에 진학한 뒤 어엿한 직장을 얻어 사회적인 지위를 영위하는 모델. 이 모델은 안타깝게도 조선시대 과거제와 무척 닮았다. 전국의 유생을 줄 세워 급제한 소수만이 온갖 특권을 누리게 하는 피라미드 형태는 혁명 전 프랑스 예수회가 교회와 귀족을 중심으로 시행하던 교육과도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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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무상 교육은 돌이키기 어려운 사회적 상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왜 무상인지, 왜 직업과 계층과 무관하게 모든 국민이 같은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곱씹어봐야 한다. 교육 당국도 묻지마 교육열에 마냥 끌려갈 게 아니라 무상교육을 앞세워 더욱 선명한 교육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새롭게 펼쳐질 교육은 어떤 가치와 인간형을 지향해야 할까? 성적으로 줄 세워 소수만이 혜택을 누리는 과거제형 교육에 여전히 복무할 것인가, 아니면 공공선을 위해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는 공화적 공민을 육성하는 데 방점을 찍을 것인가. 참고로 우리나라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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