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창원시의회 운영위원회는 표결 실명제를 실제 내용으로 하는 조례 개정안을 부결했다. 경남도의회도 이미 시행하고 있는 표결 실명제를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창원시의회 의원들의 태도를 두고 비판이 나오고 있다. 먼저 지방의회에서 이루어지는 투표를 공개하는 것이 민주주의 선거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대의제 민주주의 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결과일 뿐이다. 비공개 및 비밀 투표라는 선거방식은 권력 서열 관계가 분명히 드러나는 상황에서 평범한 시민들의 기본권을 보호하려고 만들어진 제도적 장치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자발적 선택으로 선출된 의원들은 선거라는 절차를 통하여 이미 권력 관계의 상부에 위치한다. 비록 기초의회 의원이라고 하더라도 선출직 의원들은 지역민의 의사를 대변하고 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바로 이런 정치적 역할에 얼마나 충실한지를 확인하려면 의회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각종의 정치적 행위는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정치인들을 제대로 감시하고 감독하려면 이들의 행위의 결과물인 사실관계들은 분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원리에 따라 대의제 민주주의의 선거방식은 공개투표를 원칙으로 한다. 이에 따라 미국이나 독일과 같은 다른 나라들의 의회정치에서 표결 실명제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원칙으로 인정되고 있다.

책임정치라는 말이 추상적인 도덕률이 아니라 실질적인 의미를 지니려면 특정 정책에 대한 의원 개인들의 입장과 의견 역시 공개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또한 이해관계자의 권리가 상충하거나 충돌이 예상되는 정책을 지역사회에 제기하려면 반드시 여론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불가피하다. 의원 개인들의 자의적 판단이나 평가보다 지역사회의 여론이나 민심이 정책 집행의 결정타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갈등이나 분쟁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지방자치 선거에서 정당추천을 제도로 하고 있다. 개별 정치인 몇몇의 유별난 세계관이나 입장을 제어하고 수정하는 장치로서 정당정치가 인정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표결 실명제를 반대하는 창원시의회 의원들의 소속 정당인 한국당의 입장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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