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의 첩' 단칼에 거절...진주성에 남은 저항의식

구한말 을사오적을 꾸짖고 자결했던 기생 산홍(山紅).

그는 자신의 첩이 돼 달라는 이지용에게 "비천한 몸이어도 사람일진대 무슨 사유로 역적의 첩이 되겠습니까"라고 거절한다. 이지용은 크게 화를 내며 산홍에게 몽둥이질을 했다.(황현의 <매천야록> 중)

논개는 임진왜란 때 왜장을 안고 강물로 뛰어들어 이름을 남겼다.

하지만 산홍 자신은 일없는 세상에 태어나 아무 일 없이 놀고 있는 것을 한탄한다.

▲ 진주성 촉석루 내 논개 영정과 신위를 모신 의기사에 기생 산홍이 일본에 협력하는 양반들의 행실을 꾸짖는 글이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그 마음은 진주성 의기사(논개사당)에 걸린 산홍의 시 '의기사감음'에 나타나 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진주의 의로움/ 두 사당에 또 높은 다락 있네/ 일없는 세상에 태어난 것이 부끄러워/ 피리와 북소리 따라 아무렇게 놀고 있네'.

그런 산홍의 마음을 누가 헤아렸는지 남강 절벽 바위에 '山紅'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한편 추경화 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은 2016년 산홍에 대해 독립운동가 서훈 신청을 추진했다. 하지만 '요건이 안돼'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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