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도덕정치, 위선과 환멸 부를 뿐
'통치와 농단'모호한 경계 재정립돼야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2012)에서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지금 기준으로 치면 '국정농단급' 선택을 한다. 종전이 먼저냐, 노예제 폐지를 못 박은 개헌안 통과가 먼저냐 갈림길에서 고의적으로 종전을 늦추고 후자에 집중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남부군 항복이 앞서면 헌법 수정안은 흐지부지되고 노예제는 곧 다시 횡행할 게 자명했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전장에서 계속되는 가운데, 링컨은 개헌 반대파를 움직이기 위해 심지어 매수와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촌스럽게 영화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는 건 최근 문재인 정부를 둘러싼 각종 논란이 이 작품을 떠올리게 해서다. 민간인 사찰이니 블랙리스트, 직권남용이니 지난 정권의 전유물이자 청산된 패악인 줄만 알았던 것들이 하나둘 재등장하고 있다. 현재로선 명확한 실체 없는 정치 공세에 가까워 보이지만 작금의 사태는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됐는지 모른다.

블랙리스트가 특히 그렇다. 어느 정권이나 공공기관장 등 필요한 자리에 앉히고 싶은 사람, 혹은 반대로 밀어내고 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정권을 잡으면 챙겨야 할 사람이 수천 명이 넘는데 이전처럼 노골적으로 안 한다 한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라는 얘기다.

지난해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삼성전자를 방문하려 했을 때 청와대 측이 "투자 강요로 비칠 수 있다"며 제동 건 일이 있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독대를 통해 서로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걸렸을 것이다. 이후 정권과 기업 측이 암암리에 만나거나 뭔가 거래를 하는 건 '죄악'으로까지 비판받는 분위기다.

하나 그런 거래가 다수 시민의 삶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어떨까. 가령 재벌 대기업을 움직여 일자리 수십만·수백만 개를 창출할 수 있다면? 공개적으로 이 같은 주장을 한 학자도 있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그 주인공으로 그는 재벌의 경영권 승계를 보장해주는 대신 그들로부터 고용과 투자, 노사관계 개선 등을 이끌어내자고 했다. 장 교수는 지금 정경유착과 국정농단을 대놓고 부추기는 것인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문재인 정부 역시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 '광주형 일자리'가 대표적이다. 정부와 광주시는 상대적인 저임금과 단협 유예라는 노동자에 불리하고 자본에 유리한 협상안까지 받아들일 태세다. 이런 정부를 욕하는 사람은 그러나 많지 않다. 그만큼 경제 사정이 안 좋고 일자리가 다급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만약 광주형 일자리 성사를 위해 문 대통령이 현대자동차 회장을 독대하고 그들의 요구 일부를 수용한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재벌에 굴복하고 적폐와 타협한 대통령이라고 마구 돌멩이를 던질 수 있겠나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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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라면 착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상황의 불가피성에 따라 사용할 수 있고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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