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이기적인 행복 욕심내기 전에
힘들고 아픈 주변 사람들 돌아봤으면

새해를 맞은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순이 지났다. 조금 지나면 입춘이 올 것이다. 봄은 꽃이 피는 생동의 계절이다.

그런데 '차라리 봄도 꽃 피진 말아라'라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이육사 시인은 '교목'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의지를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이 말은 조국의 광복이 오기까지 자신의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행복을 누리지 않겠다는 말이다.

얼마 전, <말모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잔잔한 흐름으로 따뜻한 감성을 주었다. <말모이>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으로 한 모국어를 지키고자 한 인물들의 의지를 그린 영화였다. <말모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으로, 우리말이 금지된 시대에 뜻이 있는 사람들의 말과 마음이 모여서 만든 사전이다.

가상의 인물이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 인물들을 보면 조선어학회 33인이라는 자료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어려운 시대에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추구하지 않고 희생하며 피워낸 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봄에 환하게 핀 아름다운 꽃을 보는 것은 무척 힘겨운 일이라고 한다. 때로는 환한 봄날에 꽃이 피는 것을 두려워하며 '꽃 피지 말아라'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삶이 힘겨운 사람들 앞에서도 피는 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새해가 오면 경제가 좀 나아지면 좋겠다는 서민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힘들다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렇지만 봄은 올 것이고 꽃은 필 것이다. 계절의 봄은 자연의 순리인 만큼 어쩔 수 없지만, 개인적 욕망을 위해 봄을 즐기는 것은 조금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타인을 배려한다면. '차라리 봄도 꽃 피진 말아라'라고 말한 이육사 시인의 시가 더욱 마음에 와닿는 요즘이다.

얼마 전부터 주변 상점이 비워지고 임대라는 문구가 붙여진 상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내도 조금씩 활성화되는 것으로 보였는데 빈 점포가 늘어나 거리가 을씨년스러워졌다. 주변 상인들은 사람들이 늘어나니 임대료가 오르고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가게를 비워주어야 한다며 울먹거리며 하소연했다. 남편의 회사가 부도나서 월급도 받지 못하고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지인의 눈물에 가만히 손잡아주며 등을 감싸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다. 그러한 사람들을 보는 것 자체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글이나 영화는 체험을 변용하여 우리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영화를 보거나 작가의 글을 읽으면 상상은 언제나 현실에 내재해 있으며 변용을 통해 그 가치를 더해 준다.

어려운 시대에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며 지켜낸 사람들이 더욱 생각난다. 그들은 일상에 젖어 가려져 있던 사물이나 기억에 대하여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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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를 물질 만능의 시대라고 하여도 여전히 세상을 움직이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힘은 사람에게 주어져 있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존재가 누구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고, 누구에게는 날카로운 비수가 될 수 있다. 사람은 무슨 일을 하면서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가 하는 화두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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