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국가를 지탱해온 타란토, 사람도 도시를 닮았다
조선·철강·수산업 등 발전…기간산업·해양강국 핵심지
여느 곳처럼 화려함 없지만…빈틈 없는 강인함 인상적

비에스테를 출발해서 여섯 시간 이상 버스로, 기차로 타란토를 향해 오는 내내 차창 밖에 펼쳐지는 이탈리아 남부의 풍경은 평온과 낭만 그 자체였다. 부드럽게 흐르는 곡선의 구릉지와 끝없이 펼쳐진 잘 다듬어 놓은 들판, 저 멀리 느리게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는 목가적인 분위기를 더욱 자아냈다. 그렇지만 시각적인 계절의 변화를 잘 느낄 수 없었다. 이것도 여행을 통해서 얻은 유익이라면 유익이다.

당초 한국에서 출발할 때 타란토는 나의 여행 일정에서 빠져 있었다. 물론 비에스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장화의 뒤꿈치 비에스테에 온 만큼 아드리아해가 연결해 주는 바리, 브린디시, 레체로도 가고자 했었지만 비에스테에서 타란토(Taranto)로 갑자기 일정을 바꿨다. 극적인 순간들을 좀 더 빨리 만나보고 싶은 조급함이 작용했지 싶다. 그것을 타란토가 촉발했다. 이런 결과로 여행 일정이 당초보다 1주일가량 당겨지게 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스파르타 시민 개척 도시, 타란툼 = 타란토역에 내려 어둡기 전에 숙소에 도착할 요량으로 주변 상황을 체크할 겨를도 없이 숙소로 내달렸다. 마침 날이 저무는 시간이라 기차역에서 다리 건너에 있는 구도심은 이미 적막강산이었다. 무너져 내릴 듯한 건물들이 태양의 그림자에 짓눌려 까맣게 길가에 드러누워 있었다.

총알처럼 구 도시를 지나면 지레볼레다리(Ponte Girevole)를 건너야 한다. 왼쪽으로는 두 개의 둥글게 생긴 호수 같은 바다 마레 피콜로(Mare Piccolo)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타란토만(灣), 그 만을 빠져 나가면 이오니아해와 지중해로 연결된다. 마레 피콜로에는 함정 몇 척이 정박되어 있고 작은 경비정 같은 배들이 지레볼레다리 밑으로 자주 다니는 것이 보였다.

타란토의 옛 명칭은 타란툼이다.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의 스파르타 계열의 시민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개척한 도시다.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는 대부분 그와 비슷한 시기에 그리스에서 이민을 온 이주민들이 개척했다. 이 도시들은 말이 그리스인들이지 도시를 개척한 이후에는 본국과 연결고리를 굳게 가지지 못했다. 모두 독자적인 발전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로마의 연합체라 할 수 있는 도시들은 라틴동맹이나 후에 로마동맹으로 불릴 수 있는 동맹의 고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는데 그 역할을 했던 것이 로마라는 도시국가였다. 그것이 후진국 로마와 선진국 그리스의 운명을 가르는 선이 되었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은 그리 쉽지 않은 것이다.

◇돈으로 국가 운명을 사려했던 도시 = 내가 타란툼 그러니까 타란토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의 기구한 운명이나 도시의 역사 때문이기도 하다. 기차를 타고 타란토역에 도착하기 10여 분 전부터는 산업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석유화학 산업체로 보였다. 타란토의 옛 성인 카스텔로 아라고네스(Castello Aragonese) 앞 바닷가 산책로에 서면 제철소와 조선소가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막강 해군력도 바로 이 타란토에 기지를 두고 있는데 타란토만 동쪽에는 초대형 함정들이 정박되어 있는 것도 보였다.

▲ 타란토의 옛 성 카스텔로 아라고네스. 타란토의 옛 명칭은 타란툼이다.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의 스파르타 계열 시민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개척한 도시다.

이런 연유로 타란토는 역사 이래로 부자 도시였다. 조선, 철강, 수산업 등으로 이탈리아 산업의 근간을 책임져 온 도시였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카르타고와 포에니전쟁을 치를 때 5단층 갤리선을 급조한 곳도 다름 아닌 이곳 타란토였다. 타란토가 로마 연합체로 들어오기 전에 독자적인 도시국가였을 때만 하더라도 그리스 에페이로스의 피로스왕을 스카우트하여 로마에 대항했던 그런 나라이기도 했다.

당시에 타란토는 피로스왕에게 37만 대군의 용병을 준비해 놓을 테니 와서 로마와 대신 싸워 달라는 요청을 했다. 물론 그 대군은 실제화되지 않았지만 실제 피로스왕은 이를 믿고 와서 로마와 싸웠다. 그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영웅 피로스왕도 이 나라에 믿음을 가졌다. 피로스왕이 타란토에 도착해 보니 시민들은 대부분 원형극장에 모여 연극을 관람하고 있었다. 돈으로 국가의 운명을 사려 했던 나라였다. 결과는 뻔했다. 타에 의한 승리와 평화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카르타고도 자국민에 의한 군대가 아니라 용병에 의한 군대였다.

▲ 해군 기념비. 타란토는 배의 평형수처럼 이탈리아 반도 최남부 중심을 지키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도 타란토는 이탈리아 해군의 핵심 기지로서 영국군을 주축으로 하는 연합군의 호된 폭격을 맞았다. 최근에는 1991년 걸프전쟁 당시에 미국 주도 연합군의 해군과 공군이 발진했던 곳도 다름 아닌 바로 타란토다. 역사의 기운은 타란토를 그런 곳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이탈리아 축구를 닮은 타란토 = 타란토의 도시 외관도 그가 걸어왔던 역사적 여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몇 시간만 도시를 다녀 보면 짐작할 수 있다. 화려한 구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무표정의 도시다. 하지만 이것이 로마 군단이 지녔던 장중함과 진중함의 모습과 닮아 보였다. 이탈리아 축구의 특징은 화려한 개인기나 공격보다는 철벽 수비 후 역습으로 상대방을 누른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상대에게 빈틈을 주지 않는 수비는 말 그대로 철벽같다.

타란토를 보면 이탈리아 축구팀을 보는 듯하다. 결코 덩치는 크지 않지만 단단한 돌덩이처럼 강인함이 그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작은 이탈리아, 이탈리아 속의 이탈리아가 바로 타란토라 할 수 있다. 국가의 기간산업과 해양 강국의 면모를 이곳 타란토가 가지고 있다.

▲ 타란토 해안어시장의 상인.

큰 배들은 배 바닥에 평형수가 있다. 배가 풍랑에 기울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배의 무게중심을 이 평형수가 잡고 있다. 평형수가 없는 배는 작은 바람에도 기울어 결국은 좌초할 것이다. 장화의 발바닥 한가운데 움푹 들어간 최적의 공간, 이곳에 이탈리아호의 평형수가 가득 채워져 있는 것과 같다. 이탈리아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밀라노, 심장과 같은 로마, 화려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피렌체나 베네치아와 같은 수많은 도시와는 달리 타란토는 오로지 그 모습을 감춘 채 진중하게 평형수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로마는 세 차례의 포에니전쟁 후에 세계를 제패한 제국의 길로 나아갔다. 지중해 권역의 패권자가 되었다. 비로소 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 '우리의 바다'가 실현된 것이다. 이 역사적 바탕에는 타란토라는 도시가 있었다. 두뇌와 심장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손과 발이 된 타란토가 받쳐 주었다.

▲ 타란토 구시가지.

타란토 시가지를 다녀 보면 시민들의 모습은 침착하고 안정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타란토라는 도시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나타내 보이지 않는 그런 도시였다. 저 엄마의 품 같은 타란토만(灣)이 그런 역사를 이끌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하늘'과 '우리의 땅'은 어떨까? 로마나 이탈리아의 땅이나 하늘이 아닌 '우리 지구촌 사람'의 바다, '우리 지구촌 사람'의 하늘, '우리 지구촌 사람'의 땅 말이다. 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 시엘로 노스트룸(CIELO NOSTRUM), 테라 노스트룸(TERRA NOSTRUM)이라는 말은 우리 세대나 이 지구촌에서는 쓸 수 없는 말일까? 더 나아가 '우리 지구촌 사람'의 평화인 파체 노스트룸(PACE NOSTRUM)은 안 될까?

나는 내일 그 역사의 격전지인 시칠리아로 떠난다. 그곳에 가면 이것을 시칠리아에게 물어보련다. 파체 노스트룸 그것은 세상에 없는 말이냐고. /글·사진 조문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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