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음을 알기에 빛나는 나눔
'살아있는 진주정신'사랑합니다

돈은 똥이 되기도 하고 향기가 되기도 한다. 돈은 천의 얼굴을 가졌다. 사람이 돈을 만들었지만, 그 돈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돈 때문에 기쁘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한다. 돈이 원수가 되기도 하고 은혜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 돈은 행복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습니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핍니다."

김장하 선생님의 말씀이다. 지난 16일 밤 경남과학기술대학 소강당에서 아름다운 생일잔치가 열렸다. 김장하 선생님의 일흔다섯 번째 생일(1944년생)이었다. 다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 나누며 울컥울컥 눈물도 쏟는 감동의 자리였다. 평소 선생님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모여 "김장하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펼침막을 크게 내걸었다.

정작 선생님은 모르는 사이에 몇 개월 전부터 이 생일잔치를 준비했다. 선생님은 평생 나누고 베푸는 일에는 익숙했지만, 당신 스스로를 내세우거나 칭송하는 자리는 극도로 싫어하며 피해오셨다. 그래서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비밀리에 일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에 김수업 선생님과 박노정 선생님을 황망히 떠나보내고 좋은 어른들 살아계실 때 고마움을 전하지 못한 게 한스러웠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이렇게라도 고마움을 전하는 자리를 만들자고 뜻을 모았던 것이다.

선생님은 약관의 나이(1963년)부터 한약방을 운영하며 돈을 많이 벌었다. 그 돈으로 일찍부터 소리소문없이 학생들을 도왔다. 마흔 살(1984년)에는 명신고등학교를 짓고 문을 열었다. 8년 만에 소문난 '사립' 명문고로 반석에 올린 뒤 마흔여덟(1991년)에 전격적으로 '공립'으로 전환했다. 100억대의 재산을 국가에 무상으로 헌납한 것이다. 사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보다 더 많은 돈을, 나아가 그 돈보다 더 소중한 '사랑'의 가치를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셨다. 선생님이 계셔서 진주가 비로소 진주(珍珠)처럼 아름다운 도시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선생님을 살아계시는 '진주정신'의 표상으로 흠모하고 사랑한다.

나는 교직생활 30년 동안 '공립' 태봉고 4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립'학교에서 살아왔다. 그러고 보니, 내가 교사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꿈을 다진 곳도 바로 '사립' 명신고였다. 대학 4학년 때(1987년) 선생님의 혼이 담긴 명신고등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한 것이다. 졸업 후 나는 양산, 진주, 산청, 남해로 옮겨 다니며 지금까지 사립학교 교사로서 살고 있다. 이처럼 '사립'에서 뼈가 굵은 나는 잘 운영되고 있는 사립학교를 무상으로 국가에 헌납하는 일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잘 안다.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일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김장하 선생님은 이 세상에 참된 향기를 전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사람은 맑고 밝고 따뜻하다. 나는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이사로 참여하면서 15년 넘게 김장하 선생님을 가까이서 뵐 수 있었다. 설날 댁에 세배하러 간 적도 몇 번 있다. 선생님 곁에 있으면 절로 마음이 평화롭고 미소가 번지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참된 스승은 애써 가르치지 않는다. 존재 그 자체로서 많은 사람에게 향기와 빛을 전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계셔서 세상이 향기롭고 환하다. 선생님의 100세 생일 때도 우리는 깃발을 들고 이렇게 외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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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은 더 아름다워졌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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