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사업회 고증 사업 추진
보훈공원 조성 모금도 시행

양산시와 (사)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박정수)가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동부경남 처음으로 양산지역에서 일어난 '하북 신평만세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한다.

<양산항일독립운동사>(양산향토사연구회, 2009)에 따르면 '하북 신평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3일 장날에 통도사 승려와 주민이 함께 신평마을 장터에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거사다.

양산읍내에서 27일 열린 것보다 앞서 하북에서 만세운동을 시작한 것은 통도사와 만해 한용운 선생의 인연이 영향을 미쳤다.

민족대표 33명이자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만해 스님은 일제 경찰 탄압을 피해 잠시 통도사에 몸을 맡긴 적이 있다.

당시 경봉 스님은 만해 스님을 안양암에 머물게 했는데, 이때 스님이 있던 곳이 심우실(尋牛室)이다. 훗날 스님이 서울로 돌아가 거처를 심우장(尋牛裝)이라고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같은 인연에 따라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만해 스님은 통도사 출신 학승인 오택언(吳澤彦)에게 만세운동을 조직하라는 밀지를 전했다. 오택언은 고향이자 출가한 통도사로 5일 내려와 보통지방학림 학생대표 김상문(金祥文) 등과 논의해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거사일을 13일로 정했지만 오택언은 7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만세운동이 무산될 위기에도 그와 뜻을 같이했던 젊은 승려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이날 삼삼오오 모여든 승려와 주민은 줄다리기 행사를 핑계로 신평장터를 가득 메웠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만세운동을 진행했다.

이처럼 뜻깊은 거사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것은 일본 자료에 근거한 독립운동자료집에 신평만세운동 관련 내용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은 자료 역시 날짜나 주요인물에 대한 재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시와 기념사업회는 신평만세운동을 오는 3월 9일 재연하고 역사적 의미를 고증하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그동안 양산읍 만세운동을 기념해 라이온스협회에서 주관해온 3·1만세운동 재연행사를 하북에서 시작해 중앙동으로 이어지는 행사로 통합·확대하고 기념사업회가 추진하는 보훈공원 조성을 위한 시민 성금 모금도 추진한다.

박정수 이사장은 "양산지역 최초 만세운동인 신평만세운동을 통해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고 지역 독립운동사를 올바로 세워 양산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일깨우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며 "앞으로 체계적인 독립운동사 정립을 위해 사업회가 추진하는 보훈공원 조성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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