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에서 한 언론사 기자가 질문한다. 자기소개가 먼저다. 자신 있게 "○○신문 아무개 기자"라고 했다. 뒤이어 다른 기자가 질문에 나선다. "○○일보 아무개 기자"란다. 연거푸 들으니 귀에 거슬린다. 이건 남이 자기를 가리킬 때 쓰거나 누군가가 나를 대신 소개할 때나 어울리는 표현이다. "어디 언론사 기자 아무개"라고 해야 어색하지 않다. 직함(기자)을 자기 이름 앞에 두느냐 뒤에 두느냐에 따라 '자기소개'와 '타인소개'로 의미가 완전히 달라져서다. 여태 일부(사실 아주 많을지도) 기자는 자기소개랍시고 타인소개를 해온 셈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하는 여러 기자회견부터 새해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여는 기자회견까지 장소와 대상이 다를 뿐 자기소개를 두고 벌어지는 광경은 얼추 매한가지였다. 이런 까닭에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우리말로 "워싱턴포스트 지국장 안나 파이필드(Anna Fifield)"라고 한 외신 기자의 자기소개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자연스럽지 않은 자기소개를 하는 이들은 지금껏 어떻게 말하는 게 바른 건지 모른 채 흘러왔을 거다. 이런 식의 자기소개는 비단 언론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 지도층으로 꼽히는 정계와 학계에서도 "아무개 의원"이라거나 "아무개 교수"라며 자기가 아닌 남을 소개하기 사례는 드물지 않아 보인다.

사실 자기소개 정석이자 교과서는 군인이나 경찰, 관리가 주로 하는 '관등성명(官等姓名)'이다. 계급 또는 직함을 먼저 말하고 성과 이름을 나중에 댄다. 국립국어원은 "이름 뒤에 직함(직책)이 따라붙는 자기소개는 격식이나 관습에 맞지 않아 부자연스럽다"고 밝혔다. 이제 타인소개 말고 자기소개 좀 하자.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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