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사회 몸에 관한 지배를 벗어라
시인·심리·퀴어연구자 등
신체 둘러싼 문화현상 모아
주관적인 용어 사전 만들어

흉터의 사전적 의미는 '손상된 피부가 치유된 흔적'이다.

보통은 흉터를 언급하는 것을 꺼린다. 가려야 할 것으로 받아들인다. 자연스레 흉터가 생긴 계기 또한 마음속 깊이 숨기기 마련이다.

반대로 흉터를 아주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 유명한 J.K.롤링 판타지 소설 주인공 해리 포터는 오히려 자신의 외모 가운데 단 하나, 이마에 있는 번개 모양의 흉터를 마음에 들어 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 자체가 해리 포터가 번개 모양 흉터에 얽힌 사연을 찾아가는 거대한 여정쯤 되겠다.

이렇듯 몸은 아주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상대적이다. 공통된 사전적 정의가 있으면서, 개인차가 분명한 것이 몸이다.

▲ 〈바디 북〉 프로파간다 편집부 지음

출판사 프로파간다는 이렇게 다면적인 몸과 연관한 단어를 모아 정리한 책 <바디 북-몸, 욕망과 문화에 관한 사전>을 펴냈다. 한국어와 영어로 된, 몸과 관련 있는 단어를 최대한 모아 기본 편집자와 더불어 여러 글쓴이가 정의를 내렸다.

서평가 금정연·번역가 김예령·퀴어 연구자 루인·심리학 연구자 박진영·그래픽 디자이너 양민영·칼럼니스트 은하선·음악가 이랑·소설가 한유주·시인 황인찬·에디터 황효진 등 열 명의 글쓴이가 내린 정의는 다분히 주관적이다.

책 부제가 사전이지만 객관적이지 않은 까닭이다. 주관적이기에 곱씹을 거리가 충분하다.

"남성의 경우에는 '머리'나 '배'처럼 그야말로 신체 일부를 지칭하는 말에 지나지 않지만, 여성의 가슴은 성기와 더불어 신체 부위 중 가장 주목받는 곳이자 불쾌한 판타지가 섞인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곳이다."(11쪽, '가슴'에 관해 황효진이 쓴 글 일부)

"예이츠는 항상 젊음과 늙음에 대해 노래해 왔다. 젊은이들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밝고 싱그러운 육체를 갖고 있으며, 노인은 늙은 몸을 가졌으나 젊은이들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젊음에 대한 열망이면서, 젊음과 사랑에 대한 자조에 가까운 후회를 동시에 품고 있다."(30쪽, '노인'에 관해 황인찬이 쓴 글 일부)

성별이나 지위 등 놓인 처지가 달라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글이 있더라도 천천히 읽다 보면, 서서히 대상을 이해하게 된다. 자연스레 나를 이해하고, 나의 몸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다.

출판사 프로파간다 또한 "이 책은 몸과 그 문화에 대한 하나의 통일된 입장이 아니라, 여러 필자의 주장 혹은 경험이 교차하는 '편집물' 같은 것이 됐다"고 언급한다.

책 절반은 한국어 단어, 나머지는 영어 단어다. 한국어 단어 설명과 영어 단어 설명은 각각 독립한 결과물이다.

"본문은 한국어 부분과 영어 부분으로 반분되지만, 영어 부분은 한국어의 번역이 아니고, 독립적인 에디토리얼 원칙 아래 별도로 쓰였다. 두 가지 언어, 상이한 표제어와 해설이 연결된 조금은 독특한 편제의 사전인 셈이다."(288쪽, 감사의 말 일부)

넓은 의미에서 몸을 다루는 이 책은 단순히 객체로서 몸이 아니라, 그에 얽힌 문화적 배경과 논점을 다양하게 종합한다.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의 시대적 흐름 속에 신체적,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점차 활발해지는 지금, 이 책의 어느 부분이든 독자에게 긍정적 영감을 일으키는 자극이 되길 바라고, 기대하는 마음이다."(289쪽, 감사의 말 일부)

출판사 기대처럼 이 책을 더욱 잘 흡수하려면 몸과 관련한 각 단어를 놓고 스스로 정의를 내려보자.

매우 다른 글이 나오더라도, 책에 나오는 정의와 맞닿은 점을 찾으면서 깊게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것이 서로 다른 사회구성원이 각자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의 시발점이지 않을까.

프로파간다 펴냄, 292쪽,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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