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려는 자 없애려는 자
1940년대 일제강점기 상황
한글사전 만들기 고군분투
영웅보다 소시민들에 초점

'말모이'란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또 조선어학회가 사전을 만들고자 일제의 감시를 피해 전국의 우리말을 모았던 비밀 작전의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말'을 누가 어떻게 지켰는지를 말하는 영화 <말모이>가 관객 14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어떠한 상징이나 비유 없이 직설적으로 우리말이 중요하다고 알리는 영화가 도덕적이고 계몽적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관객들은 꾸밈없이 말하려는 솔직함과 정직함에 호응하고 있다.

1911년, 우리말 사전 작업이 중단된다. 주시경(1876~1914) 선생이 만들다 미완성으로 남았다.

영화는 조선어학회가 주시경 선생이 남긴 원고를 바탕으로 우리말 사전을 펴내려는 1940년대를 배경으로 삼았다.

▲ 영화 <말모이>. /스틸컷

조선어학회 류정환(배우 윤계상) 대표, 학회의 어른인 조갑윤(배우 김홍파), 시인 임동익(배우 우현), 잡지 기자 박훈(배우 김태훈), 문당책방 주인 구자영(배우 김선영), 학회의 막내 민우철(배우 민진웅)이 문당책방 안쪽 비밀방에 모여 사전을 만들고 있다.

이때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시기. 창씨개명은 기본이며 모든 학교에서 조선어 과목을 폐지했다. 어린아이들조차 일본말을 써야 했다.

일제의 지독한 감시 아래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로 우리말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말모이>.

그런데 영화 주인공은 류정환이 아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고 시시껄렁하게 사는 김판수(배우 유해진)다. 김판수는 중학생 아들 학비를 마련하려고 소매치기를 시도한다. 하필 훔친 가방이 류정환 것이다. 귀중한 원고가 든 가방. 이렇게 둘의 시작은 악연이다.

하지만 둘은 동지가 된다. 김판수는 조선어학회에서 잔심부름을 하게 되며 한글을 배운다.

서툴지만 '기역', '니은'을 더듬거리며 외우고 쓴다.

한날 김판수는 전국 사투리를 모으는 작업에 애를 먹는 조선어학회를 위해 감옥소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죄다 부른다. 광주,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이들은 '가위', '고추장'을 고향 말로 답해준다. 이렇듯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던 사전 만들기는 일제의 감시와 압박을 이기지 못한다. 총부리를 겨누는 일제 경찰 앞에 조선어학회는 흩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말 사전 원고는 류정환의 손에서 김판수 손으로 넘어간다. 몇 년 후, 사전 원고만 오롯이 남아 <조선말 큰사전>의 기초가 된다.

영화 마지막 자막은 이렇다.

"한국어는 현존하는 3000개 언어 중 고유의 사전을 가진 단 20여 개의 언어 중 하나이며, 한국은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식민지국들 중 거의 유일하게 자국의 언어를 온전히 회복한 나라이다."

영화는 조선어학회뿐만 아니라 아무런 대가 없이 참여한 수많은 민중의 힘을 보여준다.

엄유나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그래서 먹고 사는 게 중요했던, 평범한 사람 김판수가 우리말의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어떻게 마음이 바뀌고 행동으로 옮기는지가 중요했다"고 밝혔다.

관객들은 부성애와 애국심 등에 고민하는 김판수가 자칫 뻔하고 촌스러울 수 있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의이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는 김판수 역을 맡은 유해진의 연기에 몰입하며 절정에 이른다.

"말이 모인 곳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인 곳에 뜻이 모이고 뜻이 모인 곳에 비로소 독립이 있다."

"말은 민족의 정신이며 글은 민족의 생명이다."

오늘날에도 진정성과 보편성은 무엇이라도 이길 수 있는 큰 힘을 지녔다.

한편 엄유나 감독은 2017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택시운전사>(연출 장훈)의 시나리오를 썼다.

<말모이>는 도내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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