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지""신랑"힘겨운 삶의 버팀목 되어
소소책방서 '독자와 만남'진행…드로잉작가·소설가 부부 이야기
2016년 결혼 이후 양산에 둥지…가난해도 그림·글로 일상 기록 서로 위로하며 더불어 살아가기

요즘 주변에 보면 많진 않아도 아기자기한 동네책방을 더러 볼 수 있다. 주인에 따라 개성 있는 책 선택과 배치, 단출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책방마다 열리는 다양한 모임도 빼놓을 수 없다. 동네책방은 처음 생길 때 한 번 소개하는 기사를 쓰고 나면 그만인데, 매번 열리는 재밌는 행사들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동네책방에서 열리는 모임이나 행사를 적극적으로 찾아다닐까 한다.

첫 순서로 지난주 진주 소소책방이 진행한 드로잉 작가 박조건형(42), 소설가 김비(48) 부부와 독자들의 만남 자리를 소개한다. 부부는 지난해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김영사, 2018년 9월)란 책을 냈다. 박조건형 씨의 그림에 김비 씨가 글을 덧댄 형식이다. 건형 씨는 원래도 꾸준히 사람과 노동을 그리는 드로잉 작업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러다 2017년 9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한겨레>에 '박조건형의 일상드로잉'을 연재하면서 제법 유명해졌다. 지난해 진주시 망경동 복합문화공간 도시달팽이에서도 드로잉 수업을 진행했었다. 이번 만남도 도시달팽이 1층 카페에서 열렸다.

▲ 지난 11일 진주 소소책방이 도시달팽이 카페에서 진행한 드로잉 작가 박조건형, 소설가 김비 부부 독자와 만남 행사.

그림 그리는 이야기를 하는가 보다 싶었는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결국은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구체적으로는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기'라고 해야 할까. 부부가 서로 등을 기대고 의지하면서 지독한 편견과 처연한 고통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따뜻한 말 속에 담아내는데, '아…, 아…' 하며 고개를 계속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내 덕분에 그림을 시작하다

건형 씨는 오랜 우울증 환자다. 많이 우울하겠네 하는 정도가 아니라 순식간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위험한 병이다. 김비 씨는 직접 보니 평범한 여성이었지만, 성소수자 소설가로 잘 알려졌다. 이런 둘이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참고로 건형 씨는 아내를 짝지라고 부르고, 김비 씨는 남편을 신랑이라고 부른다.

"그즈음 유행이 딱 붙은 주머니 없는 재킷이 유행이었는데 추워도 손을 넣을 주머니가 없었고 신랑이 제 손을 잡아줬고 연애가 시작됐지요. 하지만 그 당시 나이가 저는 마흔이었고 신랑은 서른네 살이었어요. 차이가 많이 나죠? 그래서 당연히 오래가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어요. 더구나 결혼은 상상도 못했죠! 연애를 오래 했고, 같이 살았고, 결혼을 해서 책까지 내서 이렇게 여러분을 만났어요."(김비)

▲ 김비 씨.

아내가 이 이야기를 할 때 책상 위 귤을 까서 절반을 아내 앞에 쓱 갖다 두는 건형 씨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부부는 2016년 12월 결혼해 지금 양산에서 산다.

건형 씨는 학창시절 만화를 따라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뒤늦게 대학 만화예술과에 입학해 공부를 하려 했다. 그렇지만, 우울증으로 끝내 학업을 포기하고 만다. 이후로는 본가가 있는 양산에서 이런저런 공장을 다니며 밥벌이를 했다. 그러다 김비 씨를 만나면서 건형 씨 일상 드로잉이 시작된다.

▲ 박조건형 씨가 그린 아내 김비 씨. 김비 씨는 항상 멀쩡한 표정으로 그려달라고 불평하지만, 건형 씨는 함께 사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장면이라며 꿋꿋이 그리고 있다.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에 실린 그림

"우연히 짝지를 그렸는데, 좋아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림이 짝지의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삼인, 2011년) 책날개에 들어갔어요. 사실 짝지가 그림을 그리라 했을 때는 싫었어요. 그래도 계속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고, 대충 그려도 좋아하고 관심을 두니까 계속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재능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주변에 관심이나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은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었어요. 운 좋게 <한겨레> 연재도 하고 책도 나오고요."(박조건형)

▲ 박조건형 씨.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삶이란

지난해 회사 현장에서 머리를 다친 일을 계기로 건형 씨는 오롯이 그림으로만 먹고살아 보기로 결심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래도 꿋꿋이 생활을 유지하는 걸 보면 이 '일상 드로잉'이라는 게 스스로에게도 꽤 힘이 되는 일인가 보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드로잉 수업을 많이 만들어 보려 했는데 생각처럼 많이 생기지 않아 이걸 계속 해야 하나 고민도 했죠. 근데 돈은 덜 벌어도 그림으로 일상을 기록하는 게 되게 멋지고 재밌는 일이잖아요. 우리 부부가 씀씀이가 안 크고, 아이도 없으니까 가난하더라도 살아보자고 결심을 하게 됐어요. 그림 작업을 하면서 좋았던 것은 제 삶에 대해 더욱 관심을 두게 된 겁니다. 그래서 제가 했던 노동이나 주변 사람들을 그리며 그림 작업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박조건형)

▲ 박조건형 씨가 그린 노동의 풍경. 양산 한 정유공장에 다니던 시절 현장 풍경과 일하는 사람들을 차곡차곡 그려 나가고 있다.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에 실린 그림

건형 씨는 우울증을 두고 평생 데리고 다녀야 할 친구인 것처럼 말했다. 김비 씨 역시 지독한 편견을 친구삼아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면서 한 발, 한 발 살아가고 있다. 누구보다 힘든 삶을 살았을 이들의 말 속에서 위로가 느껴지는 이유다.

"삶이라는 것은 분명히 어떤 균형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고통이 미친 듯이 몰아칠 때는 그 고통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 고통이 언젠가 반대급부로 나에게 돌아오리라고 믿으면서, 버티면서 자신의 삶을 또 한 발 살아가게 되면 그 시간이 쌓여서 찬사가 돼서 돌아올 것이라고 저는 믿어요. 어린 시절 고통스러운 것이 지금 이 사람을 만난 반대급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하루하루를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김비)

"느린 사람은 느린 사람 속도대로 살면 되더라고요. 나만의 삶의 방식을 찾으면 될 것 같아요. 주변에 내 삶의 속도를 이해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많진 않아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전에는 내가 모든 걸 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부족한 사람들끼리 서로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고 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잘 받는 것도 재능이거든요. 힘들 때 도움을 청하고 서로 손잡고 재밌게 살아가는 게 삶의 중요한 목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박조건형)

▲ 박조건형, 김비 부부의 책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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