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이주여성에 한글 가르치는 시인

우편으로 보내온 박순현 시인의 시집 <그녀는 불통중>(사진)을 받아들고 하동에서 만난 그의 순한 얼굴을 떠올렸다.

시인은 문해교실 어르신과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하여 그의 시 속에는 그가 가르치는 이주여성의 말이, 어르신들의 말이 가득하다. 시인은 시집 속에 자필 사인과 함께 '그대는 꽃이어라'란 문구를 넣었다. 이주여성이나 문해교실 어르신들 역시 그에게는 꽃이었을 테다. 꽃들의 노랫소리를 가만히 듣는 시인의 순한 얼굴을 다시 떠올려본다.

"눈먼 탓으로,/ 인당수가 아닌 하동으로 팔려온 찐/ 한국말이 서툰 찐이 오늘도 식당 구석에 앉아/ 섬진강에서 건져 올린 재첩을 씻는다/ 숨소리 몰아쉬며/ 팍팍 씻어낸다/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위해/ 갯가에서 마를 새가 없는/ 심청이의 젖은 손/ 울고 있다" ('하동, 공양미 삼백 석' 전문)

"벙어리 김씨/ 지천명에 얻은 아들/ 성질 급한 아이 배 속에서 발부터 내미니/ 한국말이 서툰 아내는 벙어리 냉가슴/ 팔순 넘은 맨발의 어미는/ 벙어리 아들과 벙어리 냉가슴인 며느리와/ 반지 놓고 이응자 모르는 안사돈을 들쳐 업고/ 응급실에서 손만 동동" ('생애 첫 아이' 중에서)

그런데 지난날 우리네 할머니들의 삶과 지금 이주여성의 삶이 어딘가 묘하게 겹친다. 이 이상한 대물림은 무척이나 애달프고도 지독한 현실. 시인이 옮긴 덤덤한 말 속에 큰 슬픔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고추밭에서 죽었으면 잘 죽은 거지/ 자슥들 애 안 태우고 죽었응께/ 그래도 그람 쓰나/ 집에서 고이 죽어야지/ 아무나 그런 복이 올라나 몰라/ 새끼들이 즈그 부모 죽었으면 하는 날까지 살믄 안 될 낀데" ('소원 1' 중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이 정도 시가 되려면 엄청난 시간을 진심으로 마주해야 할 것이다. 시인은 다른 이의 말을 잘 들어주는 능력을 지닌 듯하다.

시와에세이 펴냄, 111쪽,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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