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음악재생 기기
수요 늘어 중고거래 인기
투박한 즐거움 추억 소환
 

손바닥 크기의 직사각형 본판에 콧구멍처럼 생긴 두 개의 구멍이 익숙하다면 카세트테이프를 한 번은 다뤘던 세대이지 않을까.

그런 카세트테이프의 모습이 눈에 익다면 소니 워크맨, 삼성 마이마이 같은 카세트 재생 기기 이름 또한 반갑겠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카세트테이프가 여전히 선전하고 있다.

▲ 중고로 구매한 산요 카세트 테이프 기기 JJ-P20. /최환석 기자

◇카세트테이프 흥망성쇠 = 카세트테이프가 등장하기 전에는 LP가 대표적인 음악 저장매체였다.

LP는 부피가 큰 탓에, 걸으면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1962년 네덜란드 회사 필립스가 자기 테이프라는 저장매체를 개발했다. 카세트테이프의 탄생이다. 초기 카세트테이프는 크기가 LP에 비해 작아졌지만 음질이 좋지 않아 음악 저장매체로 크게 두드러지지는 못했다.

판도 변화를 일으킨 것은 일본 회사 소니였다. 1979년 등장한 소니 '워크맨'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전에도 카세트테이프 기기가 있었지만, 재생보다는 녹음 기능에 초점을 맞췄고 외부 스피커를 장착해 크기가 클 수밖에 없었다.

소니는 반대로 재생에 초점을 맞췄다. 스피커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헤드폰을 쓰도록 했다. 그만큼 크기를 크게 줄였다.

작지만 고음질의 스테레오 음향으로 걸으면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엄청난 매력이었다.

워크맨 출시 초기 판매량이 부진했지만, 점차 인기를 끌면서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 벌어졌다.

소니 워크맨 덕분에 카세트테이프 자체도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 저장매체로 자리매김했다. 소니 뒤를 이어 여러 회사에서 카세트테이프 기기를 시장에 내놓았고 자연스레 가격대도 다양하게 형성됐다.

카세트테이프는 가격 경쟁력, 휴대성에서 LP를 크게 뛰어넘었다. CD가 등장했을 때도 가격이 싸다는 점 때문에 여전히 인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성하면 언젠가는 쇠하기 마련. 1990년대 MP3로 대표되는 디지털 음악 파일을 매체로 사용하는 기기가 등장하면서 카세트테이프는 저무는 해가 됐다.

소니는 결국 2010년을 끝으로 일본 내 워크맨 제조와 판매를 중단했다.

▲ 중고로 구매한 산요 카세트 테이프 기기 JJ-P20와 음반 세 장./최환석 기자

◇MP3에 밀려났지만 꾸준한 인기 = 세계적으로 빈 카세트테이프를 제조하는 회사도 이젠 손꼽을 정도로 몇 남지 않았다.

음악가도 대부분 무형의 스트리밍 서비스에 집중하거나, CD 음반을 내는 게 고작이다. 카세트테이프는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2017년 미국에서 카세트테이프 관련 매출이 크게 늘었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영향이 원인으로 꼽혔다.

영화 주인공인 우주를 떠도는 좀도둑 피터 퀼은 시종일관 워크맨과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는다.

엄마의 유산인 '끝내주는 노래 모음집 1(Awesome Mix Vol.1)'은 피터 퀼뿐만 아니라 영화를 상징하는 소재로 두드러졌다.

피터 퀼이 듣는 '끝내주는 노래 모음집 1·2'는 실제 카세트테이프 음반으로 시장에 등장했다.

무수히 많았던 장점은 모두 사라지고, 단점만 남은 카세트테이프지만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는 셈이다.

인기가 꾸준한 까닭에 최근 인디 음악가부터 대중 가수까지 카세트테이프 음반을 한정 출시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몇몇 국내 온라인 음반 판매 사이트에서는 아직도 카세트테이프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옛 음반뿐만 아니라 새로 출시한 카세트테이프 음반을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다.

지난 2016년 10월 29일 생긴 네이버 카페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사람들(이하 카듣사)'은 최근 회원 5000명을 넘었다.

이곳 회원들은 "오늘은 어떤 카세트테이프 음반을 들었다"는 일상적인 기록이나 시대를 풍미한 기기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기 등을 게시하면서 꾸준히 활동한다.

◇직접 들어보니 아날로그 맛 여전 = 카듣사에서 마음에 드는 중고 카세트테이프 기기를 하나 구입했다. 일본 회사 산요에서 만든 JJ-P20이라는 이름의 기기다. 녹음이 되지 않는 재생 전용 기기지만, 음향 출력이 좋고 이퀄라이징(주파수 특성을 바로잡는 기능) 기능을 탑재한 제품이라는 설명에 눈길이 갔다.

오랜만에 손에 쥔 카세트테이프 기기의 느낌은 투박했다.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음악 파일 재생 기기에 익숙해진 터라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기기를 작동하려면 건전지를 따로 사야 했고, 기기로 재생할 카세트테이프도 필요해 온라인 음반 판매 사이트에서 세 장을 구입했다.

카세트테이프 한 장을 기기에 넣고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했다. 혹시나 재생이 안 될까 우려부터 들어서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찰칵' 하는 마찰음과 함께 빈 테이프가 감기기 시작했다.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카세트테이프가 천천히 감기는 소리가 들렸다.

잊고 있던 추억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때 음악이 시작됐다. 음질은 디지털 음악 파일에 비할 바 아니지만, 특유의 음색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퀄라이저를 움직여 음악에 맞는 음색으로 변화시켰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 다소 심심했던 음악이 더욱 풍부하게 다가왔다. 카세트테이프 고유의 매력은 여전했다.

카세트테이프의 또 다른 매력은 '믹스 테이프'다. 믹스 테이프는 다른 음반이나 라디오 방송에서 나오는 음악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짜깁기한 것을 말한다.

자기만의 음악으로 구성한 믹스 테이프는 디지털 음악 파일이 등장한 지금도 쓰이는 표현이다.

빈 카세트테이프를 구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믹스 테이프'를 만들어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는 일을 상상하니 즐겁기 그지없다.

이참에 카세트테이프 녹음 기기도 하나 장만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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