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황당한 양심적 병역거부자 판별
총쏘기 게임으로 '양심'의심할 수 없어

아들에게 종종 이런 농담을 한다.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죽여? 그만 좀 죽여". 게임에 열중하던 초등학생 아들은 이렇게 응대한다. "이거 게임인데? 죽이긴 뭘 죽여? 이건 캐릭터라고!" 이런 유치한 농담을 아주 진지하고 심각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농담도, 장난도 아니다. 그야말로 한 사람의 온 인생이 걸려 있는 일에 하는 말이다. "당신은 총 쏘는 게임을 해봤습니까?"

검찰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판별하는데 총 쏘기 게임, 그러니까 FPS 장르의 게임을 해봤는지를 참고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주로 종교적 신념에 따라 사람을 살상하는 총을 들지 않겠다는 사람들이다. 예전 같으면 군대 가기 싫다는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보니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진정성을 굳이 판별할 필요가 없었다. 오죽하면 군대 대신 감옥에 가겠냐는 거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대법원 판례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지 않게 됐다. 이제 교도소가 아니라 대체복무를 시켜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진정성을 판별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판별의 방법으로 게임을 선택했다.

게임이 '동네북'이 되는 경우는 오래전부터 흔히 있던 일이다. 이제는 너무나도 식상한 소재다. '살인자, 알고 보니 평소 폭력게임 자주 해'라는 식의 헤드라인을 쓰는 기자는 질 떨어지는 기자로 취급받기 쉽다. 너무 재미있는 게임이 학생들의 성적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살인자를 양성하지는 않는다.

따지고 보면 게임에서 전쟁, 싸움, 이런 소재 빼면 남아 있을 게 얼마나 되겠는가. 전쟁과 싸움이 있으니까, 그걸 소재로 한 게임이 만들어진 것이지, 그런 게임이 있어서 전쟁과 싸움이 일어난 건 아니다, 절대로.

'총으로 사람 죽이면 안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총 쏘기 게임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검찰의 논리가 얼마나 황당하면 이런 댓글이 달린다. "앵그리버드 게임도 새총으로 돼지를 죽이는데, 이것도 하면 안 되나?" "총이 아니라 칼을 들고 싸우는 게임은 괜찮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테트리스나 농장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해야 하나?" 게임을 조금이라도 즐기고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검찰의 논리가 얼마나 실없고 황당한지 알 것이다.

검찰이 황당한 방침을 고수하겠다면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앞으로 검찰 채용을 할 때, 도둑이 되어 도시를 활보하며 차를 훔치는 'GTA' 게임을 한 사람은 걸러야 한다.

기독교 성직자가 될 사람은 이단과 마법이 판치는 판타지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불교 성직자가 기독교 세계관으로 만들어진 '디아블로'를 하면 절대로 안 된다. 이슬람 성직자는 할랄 의식을 치르지 않은 음식을 만드는 농장 게임을 절대로 하면 안 된다. 양심적 게임거부자여야만 한다.

검찰의 방침을 결정한 세대는 컴퓨터 게임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컴퓨터 게임이 이미 존재했다. 공기처럼, 물처럼, 컴퓨터 게임이 항상 존재한 세대다. 성인이 돼서 군대에 갈 나이가 될 때, 종교적 신념이 생겨 집총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총 쏘는 게임을 했다고, 그 사람의 신념은 가짜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예전에 TV 개그프로그램 인기 코너 중, 군복을 입고 나온 개그맨들이 마지막에 '군대 박수'를 치며 이런 유행어를 외쳤다.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 하지 말자!" 그 개그 코너의 제목은 '청년백서'였다. 검찰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다. "게임은 게임일 뿐, 심각해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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