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자에게 배우는 선생입니다
예비교사·예비부모에 권장
수평적 관계맺기 가이드북
'시 쓰기'통한 아이와 대화

지난달 통영 삐삐책방을 찾았을 때 책방을 운영하는 박정하(27) 씨가 한 해를 되돌아보며 추천한 책이 <상냥한 수업>이었다. 부제가 '하이타니 겐지로와 아이들, 열두 번의 수업'이다.

저자는 일본에서도 워낙 아이들 교육과 관련해 유명한 사람이고, 이미 한국어로 출판된 책도 많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오덕이나 권정생 선생 같은 분이다.

정하 씨는 원래 선생님이 되려고 했었다. 지금도 가끔 초등학교 아이들과 수업을 한다. 아이들을 대할 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 책에 많다고 했다. 그래서 책방에 들르는 학교 선생님들께 추천하는 책이다. 꼭 교사가 아니라도 누구나 한 번은 꼭 읽어 볼만한 책이다. 책 속에는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를 반성하게 하는 말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어른의 이야기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가 어떻게 제대로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 <상냥한 수업>,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어른과 아이 사이의 단절은 너는 배우는 사람, 나는 배움을 끝낸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지점에서 멈추고 생각해 보십시오. (중략) 배움을 통해 변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또 하나의 지지대가 필요합니다. 곧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관계는 성립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서로에게 배우는 관계여야 합니다. 교사도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략) 부모와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문득 돌아보니 그 과정에서 부모도 성장했다, 이러한 관계가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24-26쪽)

저자는 주로 아이들과 시를 통해 대화를 했다. 이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쓴 시나 글을 읽고 나니 어쩌면 아이들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형은/ 백화점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나는 어디에도/ 팔지 않는다/ 온 세상에/ 나는 딱 한/ 사람 그런데/ 엄마는 나를 야단친다." (초등학교 1학년의 시, 16쪽)

"우리보다 세상을 오래 산 어른들에게 배우고 싶은 것은 수학이나 영어만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직 어리니까 앞으로 많은 벽에 부딪힐 테고, 어쩌면 산산조각이 나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때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벽을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어른들에게 배우고 싶습니다." (중학생이 쓴 글, 66쪽)

무엇보다 저자가 아이들에게 시를 쓰게 하는 건, 있는 그대로 자신을 가차없이 직시하게 하려는 뜻이다. 다음 시를 보자.

"선생님 제발 화내지 마세요/나 굉장히 나쁜 짓을 했어요// 나 가게에서 껌을 훔쳤어요/ 1학년 애랑 둘이서/ 껌을 훔쳤어요/ 금방 들켰어요 (중략) 나 말도 못 했어요/ 온몸이 장난감처럼/ 부들부들 떨렸어요 (중략) 엄마한테/ 안 들킬 줄 알았는데/ 금방 들켰어요/ 그렇게 무서운 엄마 얼굴 처음 봤어요/ 그렇게 슬픈 엄마 얼굴 처음 봤어요 (중략) 나 혼자 집을 나갔어요/ 늘 가던 공원에 갔는데도/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어요, 선생님/ 어디로 가버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의 시, 111~112쪽)

진실을 써보라는 독려에 이 아이는 쓰다가 울고, 또 쓰다가 울면서 시를 적어 내려갔다. 나쁜 짓을 했을 때 감정을 세세하게 적으면서 아이는 스스로에 대해, 세상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어찌 보면 하이타니 겐지로의 생각은 간단하다. 교사든 부모든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면서 동시에 아이에게 배운다는 것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린 아이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양철북, 208쪽,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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