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먹으며 6일간 단식·명상 병행
비움 통해 몸과 마음가짐 달라져

따뜻한 거리 두기. 아름다운 간격 지키기. 문턱이 있는 사이. 이런 말들이 뜻하는 바는 간단하다. 너무 맞붙어 있으면 느낄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들이 있어서다. 일부러라도 떨어져 있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우연히 밥상을 그렇게 하게 되었다. 하루 세 번씩 만나던 밥상을 멀리하고 밥상 없이 지냈다.

새해 앞뒤로 딱 엿새 동안 단식을 했다. 단식은 많이 해 봐서 익숙한지라 감식 하루 만에 본 단식을 했는데 이번에는 꿀 단식이었다. 소금단식, 효소단식, 과일단식, 된장국단식 등을 해 봤지만 꿀 단식은 처음이다. 태국 북부 고산족들이 채밀한 천연야생 목청 꿀이라고 선배가 권해서다. 야생벌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에 집을 짓는다고 한다. 사람이 만들어 준 벌통에서 양식 한 꿀과는 다를 것이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내고 자빠진 김에 쉬어간다고 귀한 꿀을 보니 단식을 해야겠다고 여겼다. 창자를 싹 비우고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단식 이틀 되는 아침에는 레몬이 없어서 라임즙을 1.8리터 페트병 생수에 섞어서 빠르게 먹고는 붕어 운동과 합장합척 운동을 해서 관장을 했다. 단식 때는 밥만 굶기보다는 가벼운 운동과 명상을 하면 좋다. 일상생활을 그대로 할 수도 있다.

단식 엿새 동안 경을 읽었고 오체투지를 했다. 오체투지는 미세한 구분동작으로 했다. 기도문은 딱 한 줄.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했다가 '주여,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로 바꿔 외웠다. 이는 동방 정교의 중요한 수행법으로 오감남의 저서 <기도>에 잘 나와 있다. 비우고 낮추는데 최고의 기도문이다.

경은 머리맡에서 집힌 대로 읽었다. 초감 트롱파의 책과 고엔카의 글을 읽었다. 공관복음 중심으로 성경을 읽었다. 특히 톨스토이의 요약복음서와 함께 나그함마디 문서로 알려진 도마복음을 음미하며 완독했다. 도마복음은 은유와 상징, 대립어가 많아 난해하지만, 주해서보다 원문을 여러 번 읽는 게 좋다.

단식이 진행될수록 몸은 가벼워지고 여러 기초적인 욕구들이 잦아든다. 사물이 명료해지면서 몸과 마음은 자극에 섬세하게 반응한다. 몸속을 돌고 있는 피가 느껴지고 숨이 드나드는 것이 보이기도 한다.

껌딱지 같던 식탐이란 놈이 저만치 물러나 앉았다. 하룻밤 안식을 위해 아침에 일어날 때와 밤에 잠자리에 들 때 방과 마루를 쓸고 닦듯이 영혼이 깃들어 있는 몸을 늘 정갈하게 하고 삿된 생각이나 부질없는 욕망이 스미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신성한 의무처럼 여겨졌다.

누가복음 17장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특정 시간과 공간 속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고 했다. 요한복음 3장에서는 '하나님이란 사람 속에 들어있는 영'이라고 했다. 도마복음은 더 강렬하게 말한다. 우리는 빛으로부터 왔고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예수형님'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한 아버지의 같은 자식이니까.

불교에서 말로 짓는 구업, 마음으로 짓는 의업, 몸으로 짓는 신업(행업)을 말한다. 여기에 음식으로 짓는 식업을 추가하고 싶다. 음식으로 짓는 업이 만만찮다. 맛집 기행이니 식도락이니 하면서 맛 칼럼니스트들의 혀 놀림, 글 놀림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세상을 망치고 몸을 망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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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거룩한 성전처럼 가꾸는 것. 그러기 위해서 몸을 대청소한다고 할까, 초기화한다고 할까. 한식도 양식도 아닌 단식. 새해 다짐이 있다면 단식을 출발점 삼아보면 어떨까. 한 번 딱 자르고 나면 새로운 경지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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