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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호 열사 사망 16주년]표세호 경남도민일보 기자 인터뷰

"우리 사회는 아직 그가 남긴 과제를 풀지 못했다"

이승환 기자 hwan@idomin.com 입력 : 2019-01-10 11:56:42 목     노출 : 2019-01-10 12:06:00 목

2003년 1월 9일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씨가 일터에서 분신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 '하늘에서 지켜보겠다', '해고자 복직하기 바란다'며 원망과 한을 담은 유서를 남겼다. 당시 경남도민일보 노동 담당은 표세호 기자였다. 입사 2년이 안 된 초보 기자는 16년이 지난 지금 시민사회부장으로서 후배 기자를 이끌고 있다. 표 기자는 "우리 사회는 16년 전 배달호 열사가 던진 과제를 아직도 풀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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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세호 경남도민일보 시민사회부장. /손유진 기자 mundison@idomin.com


- 당시 가장 늦은 시각까지 회사에 남아 마감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옆에서 더 긴장하곤 했다. 그때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2003년 1월 9일 아침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해 뜨기 전에 전화를 받았는데 두산중공업에 사람이 죽었고 분신했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두산중공업에 갔는데 경찰도 있었고 노동조합 간부도 있었다.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고 검게 탄 시신 모습도 생생하다. 정권이 교체됐고 전국적으로 주목받은 사건이었다. 앞서 두 달 정도 두산중공업에서 살다시피 했다. 설 연휴에도 현장에 있었다. 배달호 열사가 분신하고 63일 지난 3월 14일 장례식을 치렀고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정치권을 비롯해 시민사회, 노동계 총망라해 대책위가 꾸려졌다."

-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택하게 사람을 몰아간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노동 분야 취재를 담당하고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분신 사고가 터졌다. 당시 두산중공업 전후 사정을 보면 극단적인 사고가 날 수밖에 없었다. 과정을 보면 두산중공업 전신이 한국중공업이었다. 공기업이었는데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다른 많은 공기업처럼 민영화 과정을 거쳤고 2000년 두산그룹이 한국중공업을 인수하게 된다. 당시 지역에서 큰 현안이었다."

- 공기업 민영화 전환 과정에서 노사 갈등을 빚은 사업장이 많았던 시기로 기억한다.

"두산그룹이 회사를 운영하면서 노사 관계가 극단적으로 많이 갈라졌다. 두산이 인수하고 나서 1100명을 구조조정했고 2001년 외주화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소사장제를 도입했다. 노조는 사측에 일방적인 회사 운영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2002년 임단협 과정에서 47일 동안 파업한다. 이 과정에서 노사 충돌도 있었고 이후 사측에서 18명을 해고하고 89명을 징계했다."

- 배달호 열사도 징계 대상이었겠다.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고 사측이 불법파업으로 고소를 해 노동조합 간부 8명이 구속됐다. 2002년 12월 8명 가운데 4명이 실형, 4명이 집행유예. 그런 과정이 있었고 배달호 열사는 2002년 12월 정직에서 복귀해 2003년 1월 분신했다."

-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내막을 보면 파업 과정에서 생겼던 징계 문제와 사측이 진행한 손해배상청구가 컸다. 사측은 소송 과정에서 조합원 재산과 월급에 가압류를 걸었다. 이 과정에서 고통을 많이 받았다. 배달호 열사 분신 전 2002년 11월에도 다른 조합원이 분신을 시도했다. 충분히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 배달호 열사 유서 내용도 기억하는가?

"가압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두산이 해도 너무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 같은 표현도 있다. 노조 말살 정책 지적하면서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겠다고도 했다. 마지막에는 해고자 복직을 바란다고 했다."

- 배달호 열사 분신 이후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이후 63일 동안 투쟁이 이어지면서 두산중공업이 한국중공업 인수 과정에서 노무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실체가 드러난다. 예를 들면 블랙리스트 같은 게 나오는데 조합원 노조 경력, 노조 행사 참여도 등을 종합해 A~E 등급을 매겼다. 조합원 교유 관계, 계파, 여론 주도층 여부 등이 세세하게 작성돼 있다. 노조는 실질적으로 조합원에게 불이익을 줬다고 주장했는데 대표적으로 잔업 배당을 하지 않는다든가."

- 일을 주지 않았다는 말인가.

"6개월 동안 잔업 특근을 가장 많이 했던 조합원이 500시간이 넘는데, 노조 간부나 노조 활동에 적극적인 조합원은 160시간 정도였다. '신 노사 문화 정립 방안'이라는 문건도 나왔는데 노조에서는 노조 무력화 계획을 실행한 자료로 주장했다."

- 문건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가?

"조합원 사이 여론 주도층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사측 표현을 빌리면 '건전 세력'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등급별로 차등 관리하는 부분이 세세하게 적시돼 있다. 이 문제가 크게 터지면서 노동부가 특별조사까지 들어갔고 조사 결과 부당노동행위로 결론 내렸다."

- 현장을 쫓아다니던 초보 기자가 16년이 지나 사회부장이 됐다. 여전히 노동 환경 문제를 접할 텐데 당시 취재 기자로서 배달호 열사가 남긴 과제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사측이 노동자 개인에게 조합 활동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재산을 가압류하는 이런 문제를 배달호 열사가 죽음으로 고발했다고 본다. 여러 사업장에서 그런 문제가 터졌는데 그게 현안이 됐고 그 문제가 결론적으로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 배달호 열사가 낸 숙제를 풀지 못한 셈?

"손배가압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냐면 사측이 노동자 개인은 물론 노조 활동 자체를 옥죄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24개 사업장에서 사측이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상대로 걸은 손배가압류 규모만 1867억 원이다. 16년이 지났는데 갈수록 규모는 커지고 있다. 배달호 열사 사망 후 그해 10월 부산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을 죽음으로 몬 것도 손배가압류 문제였다. 지금까지도 여러 사업장에서 악용한다.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으나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 배달호 열사를 통해서 우리가 더 생각해야 할 게 있다면

"16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때도 두산중공업이 파업하니 대기업에서 월급 많이 받고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무슨 파업이냐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노조가 있는 대기업마저 노사 관계가 삐끗해서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당하고 노조 탄압이 일상화되면 노조가 없는 작은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는 어떻게 자기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 비정규직은 계속 양산되고 시장은 저임금 구조로 가고 있다. 우리가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는 이상 각자 노동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지 않는가. 내가 좀 더 건강하고 내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목소리에 귀기울여줬으면 좋겠다. 그게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길 아닐까. 당장 내 문제가 아니더라도 건너 건너 내 친구, 친구 아버지, 동생, 친척 문제가 될 수 있다. 언제든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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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기자

    • 이승환 기자
  • 2019년 1월부터 뉴미디어부 일을 맡았습니다. 상담은 010-3593-5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