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아이디어로, 네모난 학교 틀깨는 유쾌한 변신
공간이 교육을 바꾸는 시도…학생 눈높이로 학교 탈바꿈…권위 벗고 친숙함에 초점
경남교육청 23곳 사업확대…학부모도 기획-감리 참여…핵심은 학생 생각 실현하기

일제강점기 병영 문화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 학교 모양은 어딜 가나 비슷합니다. 네모난 건물, 일자형 복도, 건물 중앙 현관을 장식하는 상장과 트로피….

특히, '학교의 얼굴'과 같은 상징적인 공간인 중앙 현관으로 학생들이 다니지 못하게 통제하기도 합니다. 학생을 위한 공간이 아닌 방문 손님들을 위해 늘 잘 꾸며져 있을 뿐이지요. 이렇듯 삭막하고 권위적인 공간에서 도전, 창의, 혁신이 샘솟을 리 없습니다.

진보 교육감 2기를 맞은 경남교육은 1기에 집중한 '수업 혁신'을 넘어 올해부터 '학교 공간 혁신'을 꾀합니다. 교도소와 병원 건물과 흡사한 학교 건물 리모델링을 학생들에게 맡기는 것이지요. '본관 1층에 있는 교장실과 교무실을 우리 교실로 싹 바꾸고, 교실마다 운동장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있다면 '복도에서 뛰지 마라'는 선생님 잔소리가 필요 없지 않을까요?"

무릎이 '탁' 쳐지는 해법이지 않습니까. 학교 공간이 교육을 바꿉니다.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학교, 시작합니다.

▲ 학교의 정통적인 중앙 현관 모습. /경남도교육청

▲ 전통적인 학교 모습은 중앙 현관이 상장과 트로피로 장식돼 있다. /경남도교육청

학교 공간은 학생들이 하루 중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장소다. 당연히 학생들의 행복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박종훈 교육감은 지난 2014년 당선해 학교 공간 관련 1기 공약사업으로 신설 초등학교 1학년 온돌교실 설치를 추진했다. 바닥생활을 하는 유치원생들이 초등학교 입학 후 의자 생활을 하는 데 적응 기간을 주고자 6개 지역에 128개 온돌교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학생을 중심에 둔 정책이지만 어른들의 앞선 염려에서 나온 정책이었다. 학생들의 요구가 반영된 것은 아니었다.

점차 학교 공간 디자인·재구조화를 통한 '학교 공간도 교육이다'는 철학적 공감이 확산하면서 도교육청은 '학생 중심 학교 공간 재구조화 사업'을 올해부터 추진한다.

▲ 창원 용지초교 본관 중앙 현관이 키즈카페로 변했다. /용지초교

앞서 창원 용지초등학교는 중앙 현관을 과감하게 '북적북적 생각놀이터'라는 카페로 바꿨다. 얼룩말, 호랑이, 사슴 등 각종 동물인형을 놓고 텐트로 꾸며 책도 읽고 누구나 친구와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김해 안명초등학교는 지난해 8월 학생들 눈높이에 맞춘 '나무의 성' 놀이터를 개장했다. 낡은 놀이터를 어른들 시각으로 재조성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학교에서 놀고 싶은 공간부터 찾아 나섰다.

▲ 김해 안명초교 상상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안명초교

양산 평산초교, 거창 창남초교, 통영 제석초교, 진주 가좌초교, 밀양 송진초교, 사천 용남중도 학교 공간 재구조화를 했다.

올해부터는 전면적으로 학교 공간 혁신을 확대해 진행한다. 도교육청 학교혁신과는 '학생 공간 재구조화 사업'이란 이름으로 23개 학교 공간을 리모델링한다. 올해 신설되는 행복나눔학교 3곳과 행복학교 20곳에 우선 지원하고 내년부터 확대할 방침이다.

이 사업의 핵심은 수업 연계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 공간을 진단하고 내놓은 의견을 기반으로 공간을 조성한다. 기획, 설계, 감리까지 학생과 선생님, 학부모가 참여함으로써 주인 의식과 소통, 협업, 창의, 도전 등을 배울 수 있다. 학생들이 스스로 만든 의미 있는 공간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 또한 '학교 공간이 교육'이라는 정책 철학과 연결된다.

시설과와 정책기획관실은 협업해 '오감을 깨우는 학교 공간 디자인 혁신' 사업을 펼친다. 이 사업은 이전처럼 학교 보수·시설 공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학교 중앙 현관, 복도, 체육관, 건물과 건물 사이 등 학교 내 활용하지 않는 공간을 학생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다. 광주여자고등학교의 복도 갤러리와 서울 신현중학교의 숲의 길이 있는 화장실 등이 좋은 사례다.

세부적으로 △주제(학생 제안)가 있는 도장 공사 △교육과정과 함께하는 학교 디자인 콘셉트 도출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어린이 놀이시설 설치 등이다. 신설,보수,유지 사업을 넘어 학생들의 생각을 학교에 담는 새로운 도전이다. 5억 원을 편성해 신청 학교를 대상으로 3월부터 사업을 진행한다.

창의인재과는 '도서관 시설환경개선사업'에 학생들의 생각을 담을 계획이다. 2003년 사업 시작 당시에는 학교 도서관 자체가 없어 기반 구축에 집중했다면, 2016년부터는 오래된 도서관을 학생들 눈높이에 맞게 개선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64개 학교에 25억 원을 지원했다.

올해는 40억 원으로 예산을 늘려 학교 개성과 미래 교육 환경에 맞는 도서관을 만드는데 집중한다. 특히 도서관 개선 사업에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자 학교 내 전담기구를 구성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서울시교육청 내 교육공간기획추진단 설립, 부산시교육청의 스토리가 있는 별별 학교 공간 만들기 프로젝트, 광주시교육청의 학생 중심 공간 혁신 프로젝트 '아지트' 등 학교 공간 재구조화 사업은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학교 수업과 연계해 학교 공간을 교육의 하나로 인식하고 바꿔나가는 시도는 경남도교육청이 처음이다.

학생을 관찰과 통제의 대상으로만 여기던 네모난 학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은 올해를 기점으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학생들의 아이디어로 재탄생한 울퉁불퉁, 삐죽삐죽, 알록달록한 학교 공간이 기대된다. 학생들은 어떤 표정을 지으며 생활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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