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세기 제작 추정…금관가야 지역에서는 처음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서 4∼5세기에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집모양토기가 출토됐다.

금관가야 지역에서 집모양토기가 출토되기는 처음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야계 집모양토기는 대부분 고상식(마루를 높게 쌓은 형태)인데, 이 토기는 지면에 밀착해 건축물을 세운 지면식이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5년부터 연차 발굴 중인 김해 봉황동 유적 내 4세기 말∼5세기 초 건물터 주변에서 지난해 가을 무렵 길이와 높이가 6∼7㎝인 집모양토기를 수습했다"고 9일 밝혔다.

이 토기는 정면은 평평한데 비해 뒤쪽 벽체는 반원형이고, 앞쪽은 가운데 부분에 사각형 구멍을 냈다.

▲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출토된 집모양토기(왼쪽 사진)와 말발걸이.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옆쪽에는 안에서 바깥으로 원형 창을 뚫었고, 지붕 앞쪽은 책을 뒤집어 놓은 듯한 삿갓 모양 맞배지붕이지만 뒤쪽은 둥그스름한 것이 특징이다.

강동석 연구소 학예연구관은 "가야 유적에서 출토됐거나 가야 유물로 알려진 집모양토기는 총 9점이지만 봉황동 유적 집모양토기는 다른 곳에서 나오지 않은 독특한 형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가야계 집모양토기는 창원 석동 유적 외에는 창원 다호리 고분과 함안 소포리 유적에서 나온 바 있다.

강 연구관은 "집모양토기가 무덤이 아니라 생활유적에서 나왔다는 점이 특이하다"며 "봉황동 유적에서는 사람이나 동물 모양 토우(土偶)가 출토된 바 있는데, 집모양토기도 의례용으로 제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고상식 건물은 창고로 추정되지만 이번에 나온 토기는 집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가야 생활사와 건축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봉황동 유적 조사에서는 고리 상단부에 구멍을 내고 철심을 박은 철제 말발걸이(등자)가 발견됐다.

말발걸이는 불을 사용한 흔적이 남은 자취인 소성유구 주변 5세기 초반 문화층(특정 시대 문화 양상을 보여주는 지층)에서 나왔다.

강 연구관은 "일반적으로 삼국시대 말발걸이는 고리부분에 접합부가 없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말발걸이 형태인데 마구(馬具) 제작기술과 변천 과정을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하지만 말발걸이는 6세기 무렵 유물이 많아 접합부가 있다고 해서 발달한 제작기술이 적용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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