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항일투쟁한 마산 출신 사회주의자
열린사회희망연대 보훈처에 신청 "추서 당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며 '백마 탄 여장군'으로 이름난 김명시(1907~1949) 장군 서훈을 위한 활동이 본격화됐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9일 오전 11시 경남동부보훈지청에 김 장군의 서훈을 신청했다.

이순일 희망연대 공동대표와 김영만 상임고문은 이날 독립운동가 공적조사서와 평생이력서 등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서와 '비운의 여장군 김명시' 등 거증 자료를 제출했다.

정부가 여성과 사회주의 활동가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을 확대하기로 밝힌 바 있어 사회주의계열인 김 장군이 훈장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열린사회희망연대 이순일(맨 오른쪽) 공동대표와 김영만 상임고문이 9일 오전 창원 정부종합청사 5층 경남동부보훈지청을 방문해 김명시 장군 서훈 신청을 하기 위해 서류를 제출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김명시 장군은 = 김 장군은 1907년 마산시 동성동에서 출생했다. 마산 사회주의운동을 이끈 오빠 김형선(1904~1950), 적색노조운동을 이끈 남동생 김형윤(1909~?), 여동생 김복수와 함께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1923년 마산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가 이듬해 졸업한 장군은 학비를 마련하는 게 어려워 1925년 서울 배화공립고등여학교를 중퇴하고 그해 10월 소련 모스크바에 있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들어갔다.

장군은 1927년 대학을 중퇴하고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들어가 상해한인지부 조직부·선전부 책임자를 맡았다. 그해 9월에는 상해한인청년동맹에 가입하고 부인부 책임에 취임했다. 이듬해 1928년에는 필리핀·베트남 등 각국 식민지 민족과 중국인 운동가 300여 명과 협의해 동방피압박민족반제자동맹주비회를 조직하고 위원으로 활동했다.

1929년 재만조선인반일본제국주의대동맹 결성에 참여한 장군은 기관지 <반일전선>을 제작하다 이듬해 동만폭동 때 하얼빈 시내 기차역·경찰서·일본 영사관을 공격했다.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제국주의 타도와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상해한인반제동맹을 조직했다. 이후 귀국해 1932년에 경인지역에서 오빠 김형선과 함께 <콤뮤니스트>, <태평양노조> 등 비밀 기관지를 발행하고 여성 노동자를 교육했다.

하지만 조선공산당 재건 조직운동이 발각돼 그해 5월 신의주에서 일제에 붙잡혀 7년간 옥살이를 했다. 1939년 만기 출옥한 장군은 중국으로 건너가 톈진·베이징 등 일본 점령지구에서 조선의용군 화북지대 대원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이때 '여장군', '백마 탄 여장군' 등으로 불렸다.

장군은 1945년 해방 후 귀국해 조선부녀총동맹 선전부 위원, 1946년 남조선민주여성동맹 선전부장, 1947년 전라도에서 발생한 우익테러사건과 관련해 민주주의민족전선 조사단원으로 참여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행적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듬해 10월 10일 부평경찰서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당시 내무부장관은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장군이 어릴 때 살았던 집은 오동동광장 뒤편 옛 마산시 동성동 189이다.

◇창원시 소극적 = 김영만 상임고문은 김 장군이 훈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확신했다.

김 상임고문은 "그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이 많이 이뤄졌다. 여성을 들자면 박헌영 남로당 당수 부인인 주세죽은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창원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조봉암 진보당 당수 부인인 김조이는 2008년 건국포장을 받았다"며 "의열단 단장인 김원봉 장군의 부인인 박차정은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부산에 동상도 세워져 있다. 그런 분들에 비하면 김명시 장군이 아직까지 추서 받지 못했다는 게 너무나 이상하다"고 말했다.

김 고문은 "김 장군이 아직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은 고향에 있는 우리 후대들이 장군을 못 챙겨서다. 이미 추서 받았어야 할 분인데 후대들이 안 챙겨서 못 받았다고 생각하면 부끄럽고 미안한 일이다"고 했다.

앞서 희망연대는 지난달 김명시 장군과 명도석 선생 동상을 마산 오동동광장에 세우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창원시는 소극적이다. 시는 희망연대에 보낸 회신에서 "김명시 장군은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행적은 확인할 수 있지만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로 등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독립유공자 선정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하지만 밀양시는 서훈과 관계없이 의열기념관 등을 짓고 김원봉 장군을 기리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 '팔로군행진곡'과 북한 인민군 군가 '조선인민군행진곡'을 지은 정율성 선생 흉상을 세우고, 거리 이름도 만들었다.

김 고문은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념을 떠나서 누구든지 기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창원시 회신 내용 중 '우리 시에는 국가보훈처에서 공훈을 인정한 독립유공자 106분이 있으며 현재까지 동상을 건립한 분은 없다'가 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시민 요청이 있으면 동상을 하나하나 만들어나겠다고 말하지는 못할망정 독립유공자 106분이 있는데 동상을 건립한 분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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