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균형발전 공론화 성공…현실적 성과는 아직
의제 이슈화 역대정부 최고
전면 개정안 세부내용 논란
자치경찰제 등 도입 늦어져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관련 의제를 문재인 정부만큼 적극적으로 공론화하고 추진한 역대 정권은 없었다.

2017년 대선 후보 시절부터 '지방분권 개헌' '연방제 수준의 자치제' 등을 공약한 문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안, 재정분권안,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안, 자치경찰제 도입안을 잇달아 내놓았다.

문제는 부푼 기대를 못 따라가는 실질적 성과다. 재정분권 정도만 이제 첫걸음을 뗐을 뿐 나머지 지방이양일괄법, 자치경찰제 등은 이런저런 난관에 부딪혀 표류하는 상황이다.

◇재정분권 일부 진척 = 지난달 국회는 지방소비세율을 부가가치세 중 11%에서 15%로 인상하는 내용의 부가가치세법·지방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10월 30일 '제6회 지방자치의 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재정분권안이 첫 결실을 맺은 것으로, 당시 문 대통령은 "임기 내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 대 3으로 만들고 장차 6 대 4까지 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 경남도민 지방분권 개헌촉구 결의대회가 지난해 경남도청 신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염원하는 각종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이로써 올해부터 3조 3000억 원 규모 국세가 지방으로 이양되며 현재 76대 24 수준인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은 74 대 26으로 조정된다. 2020년에는 21%까지 인상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정부는 늘어난 지방 재원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포용적 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재정이 열악한 기초자치단체를 중심으로는 여전히 불만이 팽배하다. 국비인 지방교부세 감소분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까닭이다. 정부는 물론 지방소비세 인상 혜택을 입을 광역지자체의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없으면 기초단체는 더욱더 어려운 형편에 놓일 수 있다.

◇지방자치법 개정안 논란 = 지난해 10월 문 대통령이 재정분권안과 함께 공개한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안은 현재 행정안전부 입법예고를 거쳐 국무회의 의결-국회 법안 제출 절차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늦어도 올 상반기 중에는 법 개정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하는데 이 역시 세부 내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이 일찍이 약속한 바 있는 '시도지사 간담회 정례화·제도화' 명시를 비롯해 기존 법정 부단체장 외에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광역 부단체장 선임 자율화, 각 시도의회 의장에 의회 사무직원 임용권 부여, 주민발안제 도입 및 주민소환·주민투표 청구요건 완화, 자치분권 영향평가 시행 등은 큰 진전으로 꼽히지만 지역의 숙원인 자치입법권·자치재정권 확대는 쏙 빠졌기 때문이다.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상임의장인 이기우 인하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한 토론회에서 "정부안에 따르면 지방은 여전히 국가가 정한 법령에 예속된 집행권만 부여받은 중앙의 하부집행기관"이라며 "주민발안제나 주민소환제 또한 주민입법권, 즉 자치입법권 강화라는 근본적 전제조건이 결여돼 있다. 대통령이 언급한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과 지방주도 지역발전을 위해선 자치입법권·자치재정권 강화가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또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자치경찰제와 지방이양일괄법도 결코 낙관적인 상황이라 할 수 없다.

◇광역 자치경찰제 지연 =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광역단위 자치경찰제 도입안'은 최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차원에서 논의가 한창이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과 맞물려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자치경찰제를 전제로, 즉 국가경찰 권력 분산을 조건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이 검토 중인데 자치분권위안은 미흡하다는 게 이견의 핵심이다.

사개특위 위원인 곽상도(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6월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에 수사권 조정은 자치경찰제와 함께 한다고 돼 있으므로, 자치경찰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합의문도 무효가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자치분권위안에 따르면 오는 2022년까지 전체 국가경찰(11만 7617명)의 36%(4만 3000명)를 자치경찰로 이관하는 가운데, 자치경찰은 주민과 밀착된 민생치안 수사를 책임지고 국가경찰은 정보·보안·외사를 비롯한 전국적·통일적 처리가 필요한 사무를 담당한다.

황문규 자치분권위 자치경찰특위 위원은 이와 관련해 "지금 국가경찰체제에 의한 치안이 굉장히 안정돼 있는 데다, 급격한 변화에 따른 국민 혼란을 최소화해 자치경찰제의 지속적 추진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자치경찰제는 올해 하반기부터 시범지역으로 지정된 세종, 서울, 제주와 광역시 1곳과 도 단위 1곳을 공모선정해 시행하고, 2022년 전국시행할 방침이다. 현재 경남도는 공모 신청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지방이양일괄법도 표류 = 중앙정부의 행정권한 일부와 총 571개 사무를 포괄적으로 지방에 넘기는 내용을 담은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안도 지난해 11월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운영위에 상정됐으나 그 후 감감무소식이다.

정부는 "지방이양일괄법이 제정되면 주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행정이 이루어짐으로써 각 지자체가 주민 수요에 더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경제·산업·인구·지리 등 다양한 개별 여건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재정대책의 부재, 비효율적 사무 분배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국회 운영위원인 이철규(자유한국당) 의원은 "중앙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게 권한이 아니라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중앙정부의 인력과 예산이 동시에 가지 않았을 때 지방정부에 어떤 부담이 될지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운영위원인 윤소하(정의당) 의원도 "입법 취지는 동의하지만 66개 법률 관련 조항을 하나의 법률안으로 일괄해 개정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며 "일부 사무의 이양은 효율성이나 불일치성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지난달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정부와 여야 간 협치의 정신이 이어져 지방이양일괄법 등 지방분권 및 지역활력 법안이 조속히 마무리되길 희망한다"고 호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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