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회원 투표로 입회 허하는 예술원
'그들만의 세상'향한 개혁 요구 잇따라

지난해 말 발행된 한국작가회의 회보 통권 116호(2018.9~10월호)에 유독 눈길을 끄는 글이 실렸다. "할 일도 많은데 이런 글까지 써야 하나, 자괴감이 든다"는 첫 문장 때문이었을까. '특별기고' 형식으로 글을 쓴 사람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인 유용주 시인. 그는 먼저 예술원 문학 분과 회원들의 균형문제를 지적하며 입회 방식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기존 회원 3분의 2 찬성으로 가결된다는 "참 이상한 방식"을 지적하며 이렇게 한탄한다. "그러니 줄을 안 서겠는가, 줄을 서니까 누구는 누구 라인이라는 말이 나돈다. 더군다나 무슨 대학입시라고 5수, 6수 끝에 회원이 된단 말인가." 그리고 뼈아프게 덧붙인다. "회원은 임기가 4년이고 연임이 된다. 여태까지 중도에 그만둔 분들은 한 분도 없다. 사실상 종신제다. 감히 제안을 드린다. 4년 임기 한 차례만 하면 좋겠다. 또 하나는 월 200만 원씩 (연금을) 지급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무보수 명예직이면 어떨까. 예술원 회원, 그 타이틀 하나만 하더라도 명예 아닌가. 회원들 얼굴을 보니 모두 잘사는 분들이다. 문학 분야 상위 1%에 드는, 이미 일가를 이룬 선생님들이다. 뭘 더 바라실까."

사실 유용주 시인의 이런 지적과 한탄은 지난 2008년 당시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였던 강경호 소설가가 '대한민국 예술원은 개혁되어야 한다'는 제목으로 일침을 가한 것과 맥락이 같다. 이후 지금까지 문단이나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적은 거의 없다. 물론 2014년 미술 분과에서 '예술원, 그들만의 세상'이란 제목의 좌담형식으로 같은 지적을 했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이유는 뭘까? 삼척동자도 알고 남을 일이 아닌가. 지난 1957년에는 예술원 회원 문제에 대한 신문기사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거창하게 대한민국 예술원이란 곳에서 하는 일에 대한 의문, 투표 방식 등. 1958년에 문화보호법이 폐지되고 날치기로 예술원법이 통과되는데 여기서 예술원 회원은 예술원 회원이 투표하는 종신제가 된다. 물론 현재는 종신제가 아니다. 그러나 연임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종신과 다름이 없다. 이것 자체로만 어마어마한 권력이 될 수밖에 없다. 누구든 회원이 되기 위해선 기존 회원들에게 줄을 서야하니까 말이다. 강경호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 예술원의 편중화를 빗대어 '퇴임 교수들의 놀이터'라고 비아냥거리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자칫 대학교수 출신이 아니면 예술원 회원이 될 수 없는 시대가 올지 모르겠다. (…) 게다가 교수 신분이었던 사람들은 퇴직연금 등으로 생활이 비교적 유족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고액의 예술원 연금이 추가되니 과연 지급의 명분이 있는지 짚고 넘어 가야할 부분이다. (…) 특권과 혜택이 많은 단체일수록 입회와 관련해 추문이 일게 마련이다. 예술원도 예외가 아니다. (…) 명예도 얻고 가외 소득도 챙기는 몰염치한 호사가들을 위해 국민 혈세가 낭비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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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10년 전의 지적이다.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니질 않은가. 한국작가회의 회보에 기고한 유용주 시인의 글은 그의 작은 소망으로 마무리된다. "예술원 회원 선정을 직선제로 하면 좋겠다. 한국문학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존경받는 선생님들 대상으로 후배 작가들이 투표해서 뽑으면 좋겠다. 후보자를 두고 최소한 기득권자들의 찬성 반대만 없어도 뒷말은 없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한 시인의 안타까운 외침이 어떤 메아리로 돌아올까?, 하고 궁금해 했었다. 그러나 역시 잠잠하다. 새해다. 예술원이 무늬만의 예술인이 아닌, 염치와 자긍심을 지닌, 명실상부한 공로 있는 예술인의 단체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 절실하지만 지금 이 나라는 아직도 멀었다는 '돼지보다 못한'(?) 이 기분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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