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용이 춤춘다

용추(龍湫)라, 용이 하늘로 오를 때처럼 꿈틀거리며 흘러내리는 폭포란다. 용추사 들머리의 폭포를 일러 용추폭포라 하는데 말 그대로 두 차례 몸을 비틀며 물이 떨어져 내린다.
이를테면 폭포 위에서 볼 때 왼쪽으로 한 번 물줄기가 돌았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다음에는 한가운데로 쏟아져 내린다. 높이가 15m쯤 된다니까 그다지 크지는 않은 셈이다.
하지만 폭포와 마주 앉아 5분만 있어도 사람 소리는 물줄기 소리에 묻혀 버리고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여름철 장마 끝무렵에 찾으면 잘디잔 물방울에 옷깃이 축축해질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용추계곡의 자랑이 폭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용추사 일주문으로 잘못 알려진 ‘덕유산 장수사 조계문’도 대단하다. 장수사는 해방 때만 해도 듬직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 뒤 전란을 겪으면서 나머지는 모조리 불타 버리고 일주문조차 무너졌는데 지금은 이나마 원래 모습을 되찾아 공포의 섬세함과 처마의 날렵함을 뽐내고 있다.
계곡은 폭포 아래위로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위로 오르면 상사평 마을과 자연휴양림이 나온다. 너비는 좁아지는 반면 대부분 바위로 이뤄져 있어 시원한 느낌이 더욱 커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슬러 오르는 대신 아래쪽 그늘진 알맞은 데에다 자리를 깐다. 말하자면 식구들이나 일행들끼리 어울리기에는 널찍한 데가 많은 아래쪽이 더 좋기 때문이겠다.
용추계곡에는 명승지가 많다. 명승지마다 전설이나 유래가 얽혀 있어 이를 더듬으면서 옛적 사람들의 상상력을 되밟아 보는 재미도 작지 않다.
일주문 바로 아래에는 상사바위가 있다. 스님을 사랑한 뱀의 이야기가 똬리를 튼 곳이다. 하늘의 도움으로 밤만이라도 스님과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됐는데, 날이 샐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 지내다 보니 여자로 변신한 몸이 뱀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파탄을 맞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물줄기는 가는 곳마다 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용소와 꺽지소가 잇달아 있으며 매바위 바로 아래 새로 지은 정자가 서 있는 곳에서는 푸르죽죽한 물이 꽤 깊어 보인다.
그나저나 매바위는 어찌 그리 닮았는지, 무어라 이름을 붙여 놓은 바위들을 보면 이리저리 한참 뜯어봐도 고개를 끄덕거릴까 말까 한데, 매바위는 그냥 한 눈에 ‘딱’이다. 날갯죽지도 날렵하고 톡 꺾어진 매부리도 그대로다.
계곡 가장 아래쪽 매표소 옆에는 심원정이 붙어 있다. 옛적에는 선비나 벼슬아치들이 기생들 앉혀 놓고 풍악을 울리거나 시회(詩會)를 열곤 했음직하다. 이제는 더 깊은 골짜기로 올라가지 않고도 솔바람과 물줄기에 한 나절을 맡기고 싶은 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가볼만한곳-승안사 폐사지

수동면 우명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 승안사 폐사지에는 돌부처와 석탑이 있다.
아랫도리를 흙 속에 묻은 돌부처는 몸통이 갸름하고 얼굴이 퉁퉁해 자연스럽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얼굴 표정만은 모르는 이가 봐도 알아 차릴만큼 생생하다.
눈두덩과 광대뼈가 튀어나왔고 귀에는 귓바퀴까지 새겨놓았다. 고개를 살짝 치켜들었는데 입술은 반달 모양으로 올라붙어 벙긋 웃는 모습이다. 고려 초 함양 호족의 넉넉한 모습이 담긴 듯하다.
돌탑은 돌부처 오른쪽 밤밭 들머리 남새밭가에 4m 높이로 서 있다. 이층으로 올린 기단 위에 지붕돌과 몸돌을 삼층으로 쌓았다. 위층 기단 면석에는 부처와 보살, 구름을 타고 날아오르는 천녀 모양이 8개 있고 옆쪽 갑석에는 복스런 연꽃잎이 어우러져 있다.
기단 바로 위 1층 몸돌에는 빙 둘러가며 사천왕상을 새겼는데 여느 절간 들머리 사천왕문에서 보는 우락부락함과 사나움은 간데 없고 오히려 귀엽다는 느낌을 준다. 크지 않은 탑에 이렇듯 아기자기하게 새긴 뜻이 무얼까, 한 번 생각해보게 해 준다.
탑에서 오른쪽으로 계단을 거친 다음 산줄기를 타고 오르면 함양의 거유 일두 정여창의 무덤이 나온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돌을 다듬어 세운 다음 봉분을 쌓아 올렸다.
문인석과 망두석을 비롯한 장식물이 서 있고 신도비도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죽은 이를 기리는 산 이들의 뜻이 잘 남아 있긴 한데, 이렇게 우람한 무덤은 죽은 이가 아니라 산 이들만을 위한 것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기도 한다.
탑에서 밤밭으로 들어가면 하동 정씨 제단이 나온다. 또 승안사터 들머리에는 춘수정이 있는데 이것도 정씨 일가의 것이다. 말하자면 승안사 폐사지 일대에 정씨 문중의 유택과 정자가 자리잡은 셈인데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이 머리를 스친다.


△찾아가는길

용추계곡에 가려면 통영~대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함양을 지나 지곡 나들목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여기서 안의로 방향을 잡고 24번 국도를 따라 달려야 한다.
10km 남짓 달렸을 때 안의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거창쪽으로 가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농월정 계곡과 용추계곡을 알리는 표지판이 총총 서 있기 때문에 길을 잃을 걱정은 안해도 된다.
조금 가다가 왼쪽으로 농월정 오르는 길을 떼어 보낸 다음 500m 가량 가면 왼쪽에 주유소가 나오는데 여기서 좌회전해서 길 따라 죽 가면 바로 용추계곡이다.
시간이 넉넉하고 고속도로 통행료가 아까우면 국도를 타고 가도 된다. 마산·창원에서는 내서와 함안을 지나 1004번 지방도를 따라 가다 의령에서 20번 국도에 올리는 것인데, 대의고개를 지나 산청군 원지에서 만나는 3번 국도로 갈아타고 줄곧 달려가면 된다.
진주시외버스버미널(055-741-6039)에서 함양 가는 버스는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5분마다 있다. 아니면 아침 6시부터 저녁 7시까지 30분마다 있는 거창행 버스로 가다가 함양서 내리면 된다.
마산시외버스터미널(055-256-1621)은 교통편이 나쁘다. 거창행 버스는 아침 9시 18분부터 낮 3시 54분까지 8대밖에 없다. 함양행은 아침 6시 30분이 첫차고 낮 5시 10분이 막차다. 11시와 낮 2시 사이에는 1대밖에 없으며 나머지 시간대는 평균 3대씩 오간다. 그러니 진주로 가서 함양이나 거창행 버스로 갈아타는 게 좋겠다.
함양읍에서 용추계곡 가는 시내버스는 지리산고속(055-963-3745)에서 아침 7시 오후 12시 30분, 6시 30분밖에 없다. 대신 안의에서는 자주 있으니 거창행 버스로 안의까지 가야 한다.
승안사터는 용추계곡에서 국도 3호선을 따라 산청쪽으로 훑어내려오다가 10km 남짓 되는 데 있다. 왼쪽으로 휘어지는 지점에 좁다란 콘크리트길이 나오는데 신경 쓰지 않으면 놓치고 지나칠 수도 있다. 들머리 언덕에 나무 사이로 조그만 정자(춘수정)가 있어서 눈에 쏙 띈다는 사실을 머리에 새겨두면 좋겠다. 승안사터와 정여창 유택은 여기서 1km쯤 걸어가면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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